[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위기에 빠진 나를 구원할 방법은 없을까?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위기에 빠진 나를 구원할 방법은 없을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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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쓰카와 소스케-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상실의 시대일수록 지키고 싶고,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있다.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가치를 부여하는 ‘무엇’이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오히려 무수히 던지는 질문에 묻히다 보면 어쩌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미로에 갇혀버린다고나 할까? 하지만 불나방이 된다 할지라도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할 터.

나쓰카와 소스케의 직업은 의사다. 그는 매일 환자와 맞닥뜨려야하는 운명을 지닌 작가다. 그가 겪었던 사람들의 절박함 즉 구원(救援)의 문제를 이제 글이라는 매개체로 치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책이 과연 사람을 살릴 수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으나 오히려 길을 잃은 적도 있었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고서점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주인공 린타로는 외톨이로 남아 막막한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책만이 유일한 친구였던 그의 앞날은 이제 예측할 수 없는 안개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남은 것이라고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먼지쌓인 고서점 뿐이다.

이제 막 어린아이 티를 벗은 고등학생인 그에게 오래된 서점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남은 혈육인 고모와 살아야하는 처지에 놓인 절망의 어느 날 말을 할 줄 아는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난데없이 나타나 “책을 구하는데 힘을 보태 달라”고 부탁한다.

평소 ‘책에는 힘이 있다’는 말을 자주한 할아버지가 생각난 린타로는 피난처이자 은신처인 책방을 벗어나 얼룩 고양이를 따라 나서지만 곧 미궁으로 빠져 들게 된다.

할아버지의 고서점은 그동안 책들의 감옥이었다. 팔리지 않고 거들떠보지 않는 수많은 지식의 집합체일 뿐이었다. 가치는 있되 세상이 원하는 책들은 다르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채. 생텍쥐페리의 말대로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말을 하는 고양이를 따라 책을 구하러 길을 나서지만 자신은 없다. 얼룩 고양이가 요청한 도움은 다름 아닌 설득과 포기였다. 누군가를 이해시킨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피곤하고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만남이다.

그리고 린타로가 만나야 하는 대상은 하나같이 흠잡을 데 없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그간 이룩한 성과를 버리라고 하는 부탁은 애초부터 무모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다름 아닌 권위와 아집에 빠진 열심은 감동이 없는 법이다. 그들은 그 점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쥐고 있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장인(匠人)아닌 장인들이었던 셈이다.

린타로는 누구를 만났을까? 무슨 이야기를 했으며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을까? 그가 만난 인물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읽은 책의 수로 경쟁하는 자칭 지식인, 줄거리만 읽으면 충분하다는 학자, 책을 팔아서 이익만 올리면 된다는 출판사 사장, 그리고 깊은 상처를 받은 책 자신.

책을 해방시키러 온 린타로는 가두어 둔 권위와 싸워야만 했다. 5만 권의 장서가 있으며 한달에 백 권을 읽어치우는 사람, 빨리 읽기 연구소 소장, 팔리는 책만 찍어내는 업자. 이들의 손에서 책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책에는 마음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 소중하게 간직한 책에는 마음이 깃드는 법이니깐.

린타로와 함께한 길에는 얼룩고양이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를 바라보고 아낌없이 사랑해준 여자 친구 사요도 있었다. 여정이 끝난 후 린타로는 여친에게 “정말 고마워. 모든 게 너 덕분이야.”라고 인사를 건넨다.

팔아치우려던 할아버지의 고서점은 다시 문을 열었고 사람의 기척이 늘고 새로운 하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가만히 물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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