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술집 ‘자쿠와’
일본식 술집 ‘자쿠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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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새로 접한 말들이 더러 있다. 필자에게는 동전노래방(‘코인노래방’)이 그렇고 ‘자쿠와’란 술집도 그렇다. 그중 특히 호기심이 동한 것은 ‘자쿠와’란 주점(酒店)형태의 이름으로, 이때 자쿠와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다.

우리나라 유흥·오락업소의 흥망성쇠 내력이 말해주듯 유행을 타는 유흥·오락업소의 원산지 대부분은 일본이다. ‘가라오케’, ‘이자카야’, ‘로바다야키’가 그렇고 ‘자쿠와’도 예외가 아니다. ‘자쿠와’에 특히 관심이 쏠린 것은 듣기에 따라 “자꾸 와” 혹은 “자구 와(=자고 와)”로 들리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뜻과는 거리가 멀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자쿠와’에서 ‘자쿠’는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즈(Star Wars)에 나오는 사막 행성의 이름. 여기서 곁가지를 친 일본판 파생상품(애니메이션이나 전자게임) 속의 “ザクとは 違ちがうのだよ、ザクとは!(자쿠토와 치가우노다요, 자쿠토와!)”가 그 뿌리인 것으로 보인다. 풀이하자면 “자쿠 따위와는 달라, 자쿠와는!”이라는 말이 된다. 이름난 만화가 이말년의 수필 11화에 나오는 “김밥과는 다르다! 김밥과는!”도 필시 “ザクとは…”라는 말을 흉내 낸 게 아닐까.

일본어 ‘~とは’는 비교할 때 쓰이는 우리말 ‘~과(와)는’과 쓰임새가 같다. 이쯤에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ザクとは(자쿠토와)’의 발음이 “자꾸 또 와”로도 들린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자쿠와’를 국내 관련업계나 언론 쪽에서는 ‘일본식 주점’ 혹은 ‘룸 (스타일) 이자카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자카야(いざかや·居酒屋)’는 원래 사케(酒, Japanese rice wine)와 간단한 음식(안주)이 곁들여지는 ‘일본식 음식주점’으로 혹자는 ‘대폿집’, ‘선술집’으로 번역하기를 즐긴다. 여기에다 룸(room) 개념이 가미된 ‘룸 이자카야’ 즉 ‘자쿠와’로 변하면 분위기도 문제도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태원 클럽 사태 직후 기어이 사달을 내고 만 ‘안양 자쿠와’도 그런 술집 구조와 분위기로 인해 집단감염의 온상이 됐을 게 틀림없다. ‘제2의 이태원 클럽’ 소리도 그래서 나오지 않았나.

‘자꾸 와서 술도 마시고 밥도 먹으라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어느 블로거는 최근 인터넷 글에서 ‘자쿠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편하게 룸에 앉아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분위기 있게 식사하고 술을 마실 수 있어 사람들이 좋아한다. …안양 자쿠와 식당에는 평일 4~50명, 주말 100여명이 찾는다고 한다.”

‘자쿠와’란 이름을 누가 갔다 붙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누군지는 몰라도 작명(作名)의 귀재(鬼才)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꾸 와’, ‘자구 와’, ‘자꾸 또 와’라는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키게 하니 말이다. 오래 전 필자는 옛 지인인 부산시청의 한 중간간부가 ‘단란주점’이란 행정용어를 자신이 처음 지어냈다며 으쓱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변한 뜻은 ‘술을 마시면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설비한 술집’이다. 한데 재미난 것은 ‘단란주점’을 중국어로 바꾸면 ‘?拉OK=k?l? OK’ 즉 ‘가라오케’로 둔갑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고려대에서 펴낸 한중(韓中)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다니 믿어줄 수밖에….

차제에 ‘가라오케’란 말의 원저작권자인 일본인의 조어(造語) 실력을 새삼 음미하는 것도 그리 허튼 수작은 아니지 싶다. 편의상 사전적 정의를 한번 살펴보자. “‘가라오케(カラオケ)’는 빈 것을 가리키는 일본어 ‘가라[空]’와 영어 ‘오케스트라(orchestra)’의 합성어다. 악단(樂團)이 없는 가짜 오케스트라, 즉 ‘무인(無人) 오케스트라’라는 뜻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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