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부부의 세계 - 사랑, 결혼, 인간
[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부부의 세계 - 사랑, 결혼, 인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1 2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한 장면.
드라마 '부부의 세계' 한 장면.

질서보다는 일탈을 할 때 심장이 더 뛴다는 점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모순은 시작된다. 왜 ‘훔쳐 먹는 사과가 더 맛있다’는 속어도 있잖은가. 해서 인간세상의 가장 큰 모순이란 다들 행복을 위해 살고 그걸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정작 세상은 일탈보다 재미없는 도덕과 질서를 강요한다는 게 아닐까. 세상 모든 행복들은 공통적으로 심장이 뛴다.

문제는 성공이든 사랑이든 그 행복이 영원하진 않다는 것. 그러니까 그런 행복들을 가졌다고 해도 심장이 영원히 뛸 수는 없는 법이다. 이건 꽤 심각한 문제인데 왜냐면 평생 ‘즐거움’이라는 마약에 중독돼 사는 인간이 가끔 일탈의 길로 빠지게 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심장이 정상 맥박을 찾게 되면 지루함이 싫어 다시 즐거움을 찾기 위해 가끔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일탈을 감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세계평화’보다는 ‘행복’이 삶의 목적인 이상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랑이란 것도 삐딱하게 보면 꽤 이기적인데 까놓게 말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니까 사랑이 좋은 거 아닌가? 그러니까 상대방보다는 사랑에 빠져 행복한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랬으니까 사랑해서 결혼까지 해놓고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겠는가.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겠지만. 아무튼 얼마 전 불륜을 소재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태오(박해준)는 아내 선우(김희애)에게 다경(한소희)과의 불륜 사실이 들킨 뒤 되레 이렇게 소리친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공교롭게도 이 대사는 <부부의 세계> 종영 후 한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된 드라마 속 명대사 설문조사에서 1등 먹었었다. 또 한 시사고발 프로는 태오의 이 대사가 ‘우리 사회를 뒤흔든 질문’이라며 현실판 ‘부부의 세계’를 취재해 보도를 했더랬다.

내용을 봤더니 요즘은 기혼자들의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스마트폰 메신저까지 등장해 기혼남녀들이 몰리고 있고, 취재과정에선 수많은 불륜제보들이 쏟아졌다.

확실히 다들 세계평화보다는 행복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하긴 어차피 지구는 어벤져스가 지킬 테니.

그랬거나 말거나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처럼 요즘은 솔직한 게 대세인 만큼 우리 좀 더 ‘진짜’를 이야기해보자. 그러니까 앞서 언급했듯 다들 행복을 위해 사는데 ‘결혼’이라는 게 과연 행복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사실 남녀가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는 이유는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니던가?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마당에 인류번영을 위한 종족번식이 주된 이유는 아닐 테고, 감질맛 나는 연애보다는 매일 같이 있을 수 있는 결혼이 더 행복할 거라 믿고 식장에 들어서게 된다. <부부의 세계>에서 태오도 선우에게 청혼을 할 때 “평생 너만 사랑하면서 더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더랬다.

하지만 태오의 그 약속은 그 순간 시간이 멈춰버렸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청혼과 승낙이 이뤄진 그 순간의 벅찬 희열도 심장이 영원히 뛸 수 없듯 영원할 순 없다. 시간은 흘러야 하고 그 흐름은 또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인데 그 변화에는 창조도 있겠지만 파괴도 있다. 우주 공간 속에서 늘상 반복되는 별의 탄생과 소멸처럼. 그리고 태오와 선우 커플은 서로 그토록 사랑했지만 이혼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연애 시절의 그 뜨거웠던 사랑이 식는 것도 파괴라면 시간의 힘이란 참 무섭다.

그렇게 꽃이 피고 지듯 사랑도 피고 진다. 불륜을 저지른 태오를 두둔하는 게 아니다. 현실판 ‘부부의 세계’에서도 봤듯 비단 태오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좀 더 크게 보면 그렇다는 거다. 실제로 <부부의 세계>도 크게 보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연애가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여러 가지 ‘일’과 ‘의무’가 추가된다. 당장 결혼준비만 해봐도 그 동안 즐기기만 했던 사랑이 일이 됨을 깨닫게 되는데 이젠 둘이 하나로 묶인 만큼 그 사랑은 한층 무거워진다.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하는 의무, 자유를 많이 포기해야 하는 의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의무, 부양의 의무, 상대방 식구들을 챙겨야 하는 의무 등등이 붙기 때문이다. 허나 가장 무거운 건 사실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닐까 싶다. 식장을 찾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결혼한 만큼 둘은 분명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행복은 길어지면 평범해지기 마련이고, 연애시절처럼은 뛰지 않는 심장 앞에 보통은 남들 앞에서만 행복한 표정을 짓게 된다. 이른바 ‘쇼윈도우 부부’는 그렇게 탄생하지 않을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물론 좋기도 하지만 기대와 달리 더 좋지 못해 다들 실망하는 게 결혼이라면 차라리 ‘전우애’로 뭉치게 될 군대 가는 심정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실망을 덜 하게 될 거고, 상대방을 ‘한명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 오래 전 방영했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서 극중 삼순(김선아)도 결혼을 하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그냥 조각배타고 태평양 건너는데 혼자 노 젓는 것보다는 둘이 노 젓는 게 나을 것 같아서..”

2020년 5월 16일 종영. 16부작.

취재1부 이상길 차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