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회관은 예술인이 아닌, 예술을 향유하는 시민관객의 공간”
“문화예술회관은 예술인이 아닌, 예술을 향유하는 시민관객의 공간”
  • 김정주
  • 승인 2020.05.1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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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엽 울산문화예술회관 관장
지난 7일 문을 연 울산문화예술회관 웰컴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금동엽 관장.
지난 7일 문을 연 울산문화예술회관 웰컴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금동엽 관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력은 대단했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코로나19는 BC(=Before Corona), AC(=After Corona), 온라인개학, 등교수업과 같은 신조어를 수없이 만들어낼 정도로 우리 일상에 숱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 영향은 지금도 가시지 않고 있다.

울산의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2월 14일의 시립무용단 기획공연 ‘신 비나리’ 뒤끝에는 서글프게도 3개월의 강요된 휴지기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에 따르면 1~5월에 예정된 문화예술 행사 27건 중 2건에는 ‘연기’, 17건에는 ‘취소’ 딱지가 붙었다. 특히 3월은 8건 모두, 4월은 6건 중 4건이 이름만 남기고 사라졌다. 2월로 잡혀 있던 상설기획공연 「배리어프리영화제 in 울산」은 그 시기를 6월(19~21)로 옮겨야 했다.

제1전시실에서 '한국화 100년 특별전' 준비를 마치고 어깨를 나란히 한 울산문예회관 가족들. 왼쪽부터 김창중 예술사업과장, 금동엽 관장, 조은경 전시기획자, 정진현 전시교육담당.
제1전시실에서 '한국화 100년 특별전' 준비를 마치고 어깨를 나란히 한 울산문예회관 가족들. 왼쪽부터 김창중 예술사업과장, 금동엽 관장, 조은경 전시기획자, 정진현 전시교육담당.

 

생활 속 거리두기 때맞춰 전시·공연 기지개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향을 바꾼 5월 하순부터는 그런 분위기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한동안 움츠러들었던 문화예술 행사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 첫 테이프는 22일 문예회관 제1전시실에서 펼쳐지는 초청기획전 <한국화 100년 특별전>, 그리고 대공연장 무대에서 막을 올리는 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연주회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울산과 함께, 희망과 함께’>가 끊는다.

“먹과 색의 아름다움을 전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5월 22일부터 6월 13일까지 20일간 이어지는 <한국화 100년 특별전>에는 한국화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근·현대 한국화 작품 60점과 소중한 아카이브자료 100점이 관객을 맞는다. <울산과 함께, 희망과 함께> 공연은 시립교향악단 송유진 부지휘자가 지휘하는 바흐의 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5번>이 ‘방구석 격리’에 지친 문화예술 마니아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 다음 바통은 26일 소공연장에 올려지는 시립합창단의 기획공연 <천원의 행복 ‘희망을 전하는 희망편지’>가 이어받을 예정. 다만, 조건이 있다. 대공연장(1천428석)의 전후좌우 객석 사이 간격을 충분히 유지한 가운데 1층 250석만 개방되는 것. 관객은 제한된 출입구로 들어와 발열 검사와 방명록 작성을 마쳐야 하고, 관람 중에도 마스크는 써야 한다. 이보다 한발 앞서 대공연장의 빗장을 풀게 한 외부대관 프로그램이 있었다. 19일 진행된 남구 구립교향악단의 온라인공연이 그것.


소공연장 앞마당, 잔디 깔린 조각공원 변모

<한국화 100년 특별전> 준비가 한창인 제1전시실을 18일 오전에 잠시 들렀다. 수고하는 직원들을 격려도 할 겸 전시실로 향하던 금동엽(琴東燁, 61) 관장이 가는 빗줄기 속에서 손을 반갑게 맞는다. 3개월여 만의 재개관이 가져다주는 희열이 그의 표정에 꾸밈없이 묻어 있다.

먼저 둘러보기로 의견을 맞춘 곳은 소공연장 아래 앞마당 빈터. 키대로 자라 소공연장의 존재감마저 지워버릴 듯 키대로 자라나 있던 활엽수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인부 1명이 바닥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발판이 될 바닥 돌들이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다. “고급 잔디로 덮을 생각입니다. 그동안 큰키나무들이 너무 잘 자라 시야를 가릴 뿐 별 쓸모가 없었는데, 차제에 조각공원으로 꾸밀 겁니다.”

조각공원으로 옮겨올 작품들은 모두 5점. 사실 그동안 지역 유명 조각가들의 몇몇 작품들은 회관 경내 여기저기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지난달에 착공, 다음 달 안에 완공될 조각공원에서는 수시로 초대전도 열릴 예정이라는 게 금 관장의 귀띔이다.

혹자는 금동엽 관장을 ‘감추어진 보석’에 비유하기도 한다. 전공학문과 이력이 그런 비유를 뒷받침해 준다. 그는 1998년 10월, 영국 런던의 ‘The City University’ 대학원에서 ‘예술경영’ 전공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인 1999년 5월, 이 대학원 ‘예술정책 및 경영학과’를 정식 졸업했다.

참고로 ‘The City’는 금융가로 유명한 런던 속의 자치구 이름으로 ‘The City University’를 ‘시립대학’ 쯤으로 여기는 것은 실수다. 그래서일까, 금 관장이 설명을 거든다. “영국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통과하려면 3학기를 채워야 하지요. 여름방학이 유일한 휴식기간인 학부 학생들은 끊임없이 책과 씨름해야 하고….” 알고 보니 총리를 지낸 인도의 간디와 네루, 영국의 대처와 블레어도 이 학교 출신이다.

가곡교실·희곡교실·그림콘서트에 관장의 경영철학 반영

금 관장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다. 건축한 지 25년이 지난 울산문예회관을 소비자(시민)친화적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다. 소공연장 앞마당을 조각공원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그의 열정도 이 꿈과 맥을 같이한다. “시민과 함께 즐기고, 배우고, 창조하는 공간, 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그의 노트를 열어보면 문예회관 경영철학이 담긴 ‘사명 선언서’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선언서의 일부. “울산문화예술회관은 △쉽게 접근하여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제공을 통해 지역민들의 문화활동 참여를 장려한다. △전통적인 것으로부터 혁신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연 및 전시예술 형태를 수용하고 탐구한다. △우수한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예술가와 관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한다.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쉽게 예술에 접근하여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같은 철학을 실천에 옮긴 것 중의 하나가 예술교실(=아트 클래스)의 신설이다. 2019년 3월, 일반시민 40명으로 닻을 올린 ‘가곡교실’과 ‘전원경의 그림콘서트’는 작년에, ‘시민희곡낭독교실’은 올해 새로 선보였다. ‘시민희곡낭독교실’은 시민이 직접 연극을 이해하고 연극배우도 경험하는 교육 프로그램인데 다른 두 프로그램처럼 반응이 몹시 좋았다. ‘시민참여형 프로그램 활성화’의 뜻이 가시화되는 흔적들이었다. 한데, 그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찾아왔으니, 달리 할 말이 없다.

성공적 실천은 그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뮤지컬 박상진’에 송철호 시장을 카메오로 깜짝 출연시킨 일이나 시립합창단의 베토벤 9번(합창) 교향곡 공연에 시민 100명을 참여시킨 일도 다 그런 뜻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5월 7일, 문예회관 사무국 건물 1층에서 문을 연 토털서비스 공간 ‘웰컴센터’만 해도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야심작의 하나다.

시립교향악단 러시아 지휘자, 22일 지휘는 불가

화제를 잠시 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인 러시아 출신 니콜라이 알렉세이예프(64, 임기 2020.2.1.~2022.1.31) 쪽으로 돌려보았다. 답이 돌아왔다. “그분, 코로나19 때문에 22일자 공연에는 참석 못하실 겁니다. 교향악단 공연 연습에는 보통 2~3주는 걸리는데 입국 후의 자가격리 기간(14일간)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휘가 불가능한 거지요.” 부지휘자가 대신 지휘를 맡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금동엽 관장은 한 가지 흥미로운 뒷얘기를 들려주었다. 지휘자 재신임의 잣대로 영미권의 ‘롱 콘트랙트(Long contract)’를 준용한 것. “이 계약조건은 여러 변수를 상세하게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니콜라이 지휘자가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일로 연간 공연지휘 횟수 8회를 다 못 채우면 연봉을 1회당 1/24씩 깎게 되어 있지요.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불가항력’의 경우인데 만약 사적인 일로 지휘를 못하게 되면 연봉의 1/12을 깎을 수 있지요.” 코로나19 상황이라 해서 연봉을 거저 가져가는 건 아니라는 얘기였고, 그 전까지는 이런 규정이 없었다고도 했다. 니콜라이 지휘자가 결국은 ‘연간 8회 책임지휘’ 조건을 다 채우게 될 것이라는 풀이였다.

“커피숍은 멋진 스타벅스처럼 수준 높일 것”

금동엽 관장에게는 결재가 덜 끝난 미완의 작업들이 몇몇 남아있다. 커피숍은 ‘멋진 스타벅스’ 분위기가 나도록 품위 있게 새로 단장한 뒤 ‘라틴커피’에 운영권을 넘겼다. 하지만 근 1년간 내부수리를 진행한 레스토랑(옛 ‘쉼터 식당’)만은 아직 새 주인을 구하지 못한 상태. 시립합창단 지휘자 선임도 미완의 과제 중 하나다,

어찌됐건 ‘큰 원칙’ 하나는 포기한 적이 없다. 회관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이젠 제도와 건물 중심에서 사람활동과 과정 중심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대세입니다. 마니아들이 고급예술을 향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일반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흥겨운 대중예술’, ‘최종 소비자는 시민’이란 표현, “창작예술은 관객이 향유할 때 완성된다”거나 “문예회관은 예술인의 공간이 아니라 그 예술을 향유하는 시민관객의 공간”이라는 말은 그의 예술 경영 철학에서 우러난 표현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에게는, 쉽사리 가시지 않는 고민이 더러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조직의 관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산에 대한 고민이다. 방문객(관객)들이 회관 야외주차장과 대·소 공연장 사이를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는 방안으로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Lincoln Center)’를 본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이 역시 예산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88올림픽 때 합창단-반주자 인연이 평생의 연인으로

고향은 대구시 남구 대명동. 3년 아래 부인 유정숙 여사(58)와는 88올림픽 때 대구 남성합창단 단원과 피아노 연주자의 관계가 연인 사이로 급속 발전했다. “올림픽 기념 전국합창공연대회에서 우리 팀이 대상까지 받았기에 좋은 기분은 지금까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 “그 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 결혼식을 올렸으니 겹경사를 맞았다고 할까요.”

양가 집안 분위기 영향을 받아 부부 모두 독실한 크리스찬. 부인 유 여사는 한동안 대구 수산교회에서 성가대 반주자로 봉사했고, 금 관장은 대구 산격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봉을 7년간 잡기도 했다.

대학 경력도 조금은 이색적이다. 영국 유학에 앞서 경북대 공대 전자공학과(1986. 2. 졸업)를 거쳐 대구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문학석사학위(1990. 8. 졸업)를 취득했다.

그 이후로는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기획팀장(2003~2004) △창원시 성산아트홀 관장(2004~2007) △대구 동구문화체육회관 관장(2007~2011) △경남문화예술회관 관장(2012~2013) △수원문화재단 문화국장(2017~2018)을 두루 섭렵했다. 교단에서는 영남대 문화예술디자인 대학원 겸임교수를 비롯해 동아대 대학원(음악문화학과)·경성대 대학원(예술경영학과)·중부대 대학원(뮤지컬음악학과)·진주교대·대구예술대·대구대 재활과학대학에서는 ‘강사’ 경력을 탄탄히 쌓았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지난해 시민도 참여한 ‘뮤지컬 박상진’ 공연 장면.
 지난해 ‘함께하는 문화 You & U’ 무지개아코디언연주단의 연주 모습.
지난해 시민도 참여한 ‘뮤지컬 박상진’ 공연 장면.
지난해 시민도 참여한 ‘뮤지컬 박상진’ 공연 장면.
지난해 문예회관 상설교육장에서 진행된 가곡교실. 사진제공=울산문화예술회관
지난해 문예회관 상설교육장에서 진행된 가곡교실. 사진제공=울산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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