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화중지우(花中之友)
[조상제의 자연산책] 화중지우(花中之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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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여러분은 진정한 벗이 몇이나 되나요? 되돌아보면 여러 벗이 있었지만 지금도 끈끈하게 연을 맺고 있는 벗은 몇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좋은 벗이라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지? 이참에 배신도 하지 않고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때가 되면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자연 속의 꽃을 벗으로 사귀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송나라 문인 증조(曾?)는 꽃 가운데서 열 명의 벗과 사귀었습니다. 그 열을 보면 방우(芳友)는 난(蘭)이요, 청우(淸友)는 매(梅)요, 기우(奇友)는 납매(臘梅)요, 수우(殊友)는 서향(瑞香)이요, 정우(淨友)는 연(蓮)이요, 선우(禪友)는 담복(?蔔)이요, 가우(佳友)는 국(菊)이요, 선우(仙友)는 암계(巖桂)요, 명우(名友)는 해당(海棠)이요,

운우(韻友)는 도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한 벗을 더해 옥우(玉友)로서 술을 들었습니다. 화중십우(花中十友)라. 참 좋은 벗을 많이도 사귀었습니다.

향기가 나는 벗은 난이요, 맑고 욕심이 없는 벗은 매화요, 기이하고 별난 벗은 납매요, 남다르게 뛰어난 벗은 서향이요, 깨끗하고 청렴한 친구는 연이라. 하하 기이한 벗 납매를 아세요? 매화의 일종으로 12월에 벌써 꽃을 피웁니다. 그러니 기이할 수밖에요. 서향은 상서로운 향기가 나는 꽃으로 천리향의 정명입니다. 참선하는 벗은 담복이요, 아름다운 벗은 국화요, 신선과 같은 벗은 암계요, 유명한 벗은 해당이요, 여운을 남기는 벗은 도미라 하였습니다.

국화와 해당은 알 것이요, 암계는 목서로 만리향이요, 도미는 들장미요, 담복(?蔔)은 뭘까요? 바로 치자(梔子)입니다. 치자라는 이름은 치자의 열매가 고대 중국의 술잔인 치(?)를 닮아서 얻은 이름이고, 담복(?蔔)은 치자를 불교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증조가 치자를 참선하는 벗이라고 한 것은 불경 유마경(維摩經)에서 “담복 숲에 들어가면 다만 담복의 향기만 맡을 수 있을 뿐 다른 향기는 맡을 수 없다.”라고 한 것에서 따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벗 중에 참선하는 향기, 공덕의 향기를 가진 벗이 있으세요? 자연에서 벗을 얻으면 치자뿐 아니라 계절마다 참으로 다양한 향기를 가진 벗을 사귈 수 있습니다. 1월 동백, 2월 수선, 3월 매화, 4월 모란과 철쭉, 5월 장미, 6월 수국과 치자, 7월 배롱, 8월 근화(槿花), 9월 국화, 10월 목서라. 해마다 기다리는 화우(花友)가 있어 행복합니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치자는 네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꽃 색깔이 희고 윤기가 나는 것이 첫째요, 꽃향기가 맑고 풍부한 것이 둘째요, 겨울에도 잎이 변하지 않는 것이 셋째요, 열매로 노랗게 물들이는 것이 넷째라고 하였습니다. 그 화려한 봄꽃들이 하나 둘 다 사그라지고 푸름이 신록으로 짙어가는 초여름 학교 정원을 온통 향기로 채우는 새하얀 치자가 시원함을 더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베틀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보는 어머니는 늘 길쌈을 하고 계셨습니다. 질 좋은 삼베를 생산해 시장에서 좋은 값을 받았다고 항상 우리에게 자랑하셨죠. 노랗게 물든 삼베. 삼을 키우고, 찌고, 삼고, 매고, 짜서 드디어 삼베옷감이 나오면 마지막으로 치자로 노랗게 물을 들입니다. 그 치자라는 것이 나에겐 참으로 신비한 열매였습니다. 나무도, 꽃도 보지 못했지만 요상하게 생긴 것이 삼베를 물들이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10여 년 전 운동을 하다 발목을 삐었습니다. 깁스도 하고 침도 맞았습니다. 깁스는 출근을 위해 매일 왕복 2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저로서는 참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깁스를 빼버리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러니 삔 발과 발목이 좀처럼 낫지 않았습니다. 발은 부어 있고 멍들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치자가 발목 삔 데 좋다고 했습니다. 치자물을 내어 밀가루와 섞어 삔 부위를 덮고 비닐로 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밀가루에 퍼렇게 멍이 묻어 나왔습니다. 몇 번을 더해 발목은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치자는 참 재주가 많습니다. 어혈도 풀고, 염증도 제거하고 차로 마시면 불면증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정약용은 윤종억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비가 그다지 천하지 않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치자는 약에도 넣고 염료로도 쓰이니 아무리 많아도 팔리지 않을 걱정은 없다”라고 하면서 치자 농사를 지을 것을 권했습니다. 꽃도 좋고, 향기도 좋고, 몸에도 좋은 치자를 화중지우(花中之友)로 사귀는 것은 어떠한지요?

조상제 범서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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