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의 인물상은 초라니?
반구대암각화의 인물상은 초라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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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에는 백두산사슴, 사향사슴,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 피식(被食)동물과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너구리, 족제비 등 포식(捕食)동물이 함께 나타난다. 그 중 호랑이와 담비는 우리나라 자연 산악(山岳)의 동물식용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이다.

현재 호랑이는 멸종되었지만, 담비는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다. 호랑이는 산신탱화에서 백발(白髮)과 백염(白髥)의 산신 곁에서 다소곳이 엎드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호랑이 대신 표범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담비는 ‘담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호랑이 잡는 담보’라는 속담에서 확인된다. 담보는 무리지어 행동하며 호랑이를 잡을 만큼 사납다. 우리나라에서 서식했던 호랑이, 표범과 현재 서식하고 있는 담비는 먹이사슬의 꼭짓점에 있다.

‘호랑이 없는 산에 토끼가 왕’이란 속담은 먹이사슬에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초라니 열은 보아도 능구렁이 하나는 못 본다’는 속담은 자연생태계에서 초라니의 재빠른 행동과 능구렁이의 느린 행동을 비교한다. 전국에 나타나는 ‘범골’과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의 ‘초라니골’, 전남 영광군의 ‘초라니바위’ 등은 범과 초라니가 관찰된 장소이거나 범과 초라니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호랑이와 담비는 세시(歲時)민속제의인 지신밟기와 오광대(五廣大) 마당에도 등장한다. 지신밟기는 정월에 마을단위로 집집마다 찾아가 한해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비는 제액초복(除厄招福)·벽사진경(闢邪進慶)의 마을 제의이고, 오광대는 제의에서 발전·확대된 연희다.

호랑이와 담비가 제의(祭儀) 마당에 동참한 까닭이 무엇일까? 호랑이와 담비가 등장하는 야류와 오광대를 소개한 문헌자료를 살펴봤지만 지금까지 제의 마당에 등장하는 호랑이, 담비의 본질에 대한 연구적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 현장의 등장 유무에 대한 단순한 기록만 있을 뿐이다. ‘수영야류’에서는 범에 대해 “제4 사자춤 마당에서는 거대한 사자와 범(담보)이 대무(對舞)를 벌이다 범이 사자에게 잡아먹힌다.”라고 소개한다. 더욱이 사자가 범을 잡아먹는다 하고, 범을 담보라고 기록한다.

자연에서 사자와 범이 만날 확률은 매우 낮다. 서식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의 공간에 등장하는 맹수 혹은 상상적 맹수의 본질적 역할은 정화의 벽사수다. 하회탈놀이에서는 벽사수(?邪獸)의 역할을 정확하게 말한다. “둘째마당 주지: 주지 한 쌍이 춤을 추며 잡귀들을 쫓아내어 탈판을 정화시킨다.”라고 하여, 주지 한 쌍을 등장시킨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제의 혹은 오광대 연희마당에서 사자와 호랑이, 호랑이와 담비 등을 등장시켜 서로 싸우는 것으로 설정하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맹수의 본질은 벽사력의 부각효과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일본 설날의 세화와 문배에 등장하는 맥(?)도 벽사수로 활용된다. 맥은 표범(豹)의 다른 이름이다. 이는 담비를 초(貂) 혹은 학(?)·맥(?) 등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맥의 그림이 붙여지는 곳은 출입통로인 대문이다. 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잡귀를 막거나 쫓아 가정의 안녕을 지키려는 기원으로 맥을 벽사수로 활용한 것이다. 벽사수는 생물학적으로 사나운 맹수를 가리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초랭이의 역할도 지적의 대상이다.

‘초랭이’는 벽사수 산초(山貂)의 부름이다. 산초는 담비 혹은 담보라 부르는 맹수다. 호(虎)는 호랑이 혹은 ‘호랭이’로 부른다. 담비 초(貂)를 초랑이 혹은 초랭이로 부른다. 범이 의인화되어 산신이 되듯, 담비는 의인화되어 초라니 혹은 초랭이가 된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통 손님맞이 의식에서 입과 눈을 뜨는 것이 일상의 행동보다 과장되게 부각된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역동적이고 과장된 행동은 사천왕상, 무인상, 인왕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는 행동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 ~1944) 의 그림 ‘절규’에서도 볼 수 있고, 놀라거나 놀라게 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그림 속 절규하는 사람의 해골 같은 얼굴 이미지는 공포를 형상화한 것이다.

지신밟기의 제의공간에 맹수를 등장시킨 이유 또한 신성한 제의공간에 삿된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게 예방하거나, 이미 들어와 있는 잡귀를 쫓아내는 벽사수(闢邪獸)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반구대암각화의 얼굴 모양을 두고 사람의 얼굴이라고 단정 짓기가 망설여진다. 동물의 먹이사슬로 접근하면 호랑이, 표범, 늑대와 함께 상위포식자인 산초(山貂=산담비)의 동물적 특징을 가미한 이상한 형상 혹은 담비를 의인화한 형상으로 제의식의 벽사적 인수(人獸)일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역삼각형의 인물상은 동물적 특징을 지닌 이상한 형상이지만 분명히 의인화된 그림일 것이다.

역삼각형은 이마 부분이 넓고 턱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좁아지는 형이다. 사마귀, 여우, 늑대, 족제비, 담비 등을 의인화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표현이라고 본다. 범, 표범, 담비와 같은 맹수는 자연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들이다. 제의공간을 넘보는 삿된 잡귀를 방어하고 쫓아내는 벽사(?邪) 역할을 하도록 당연히 선택된 사나운 짐승들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인물상은 담비의 의인화 상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초랭이’를 ‘촐랑이’로 인식하는 것도 지적사항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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