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아이들의 봉사활동 이야기
-114- 아이들의 봉사활동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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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아직 확산되기 전 일이다. 필자는 아들만 넷이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지나면서 필자의 아들들이 긴 겨울방학 동안에 모처럼 봉사활동을 가겠다고 나섰다. 큰애가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이번 겨울에 진로를 크게 바꾸는 바람에 마음 여유가 생기지 않은 탓이다. 이러한 봉사활동도 큰애가 초등학교 다닐 적부터 시작했으니 어언 6년째다.

봉사활동을 시작할 즈음 큰애는 요요(yoyo)에 관심이 많았다. 대개의 봉사활동은 대상 시설의 생활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요요에 관심을 가졌던 큰애에게는 남다른 봉사활동을 제안했다. “약간의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그동안 갈고 닦은 요요 실력을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라며…. 그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연마한 요요 묘기를 무대에서 맘껏 뽐내며 어린이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처럼 유튜브 같은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현란한 요요 기술이 눈에 익지 않았던 아이들에겐 무척이나 신기했을 것이다.

봉사활동이란 무릇 자발성이 으뜸이어야 하건만, 봉사점수란 것을 매개로 동기를 부여시키는 우리 정부의 시책이 야속하다. 시작은 그랬지만, 시간이 꽤 흐르다보니 “봉사활동 가자”고 하는 아내 말에 세 아들의 응대가 달라지는 것이 보인다. 어찌 되었건 봉사활동에 조금 늦게 합류한 셋째 녀석도 벌써 중학교 2학년이니 우리 가족에겐 좋은 습관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날따라 추웠던지 2시간이 채 되기 전에 봉사활동 갔던 가족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 봉사활동에서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봉사활동을 가던 매년 초, 아내의 일사불란한 지도 아래 아들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그 부모와 함께 일정 인원수의 봉사활동 팀 또는 조를 구성한다. 봉사할 시설에서 인식하기 좋게끔 조 이름을 짓고 같은 조에 배속된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해 활동 일자와 시간 약속을 한다. 그렇게 봉사활동의 동참 여부를 묻고 하던 모습이 이번에는 사라진 것이다.

아내가 때마침 집에 들른 스님에게 드리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자녀의 친구들과 약속하고 조 이름까지 멋지게 지었으면 아이들이 봉사 시간에 맞추어 제때에 나오도록 부모가 신경 써야 하는 게 아닌가요? 주말에 봉사활동 나가는 줄 알면서 약속시간이 다 돼서야 불참을 알려주거나 아예 전화도 안 돼 봉사활동 조를 같이 짜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올해는 우리 가족으로만 조를 만들었답니다. 부모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잘 안 가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난 스님의 답변이 명쾌했다. “아들의 친구들이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되지만, 그 친구들의 부모는 생각하는 수준이나 방향이 다르다고 봐야겠지요.”

학생들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과목이 동일하므로 교육효과에 대한 기대 수준과 학생들의 사고의식 수준은 비슷할 수가 있다. 모두 “남의 탓이 아니라 본인의 탓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느낌을 말로 표현할 때는 몸짓과 눈짓을 함께 쓰므로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글로 나타내는 경우에는 종종 답답함을 느낀다. 글재주가 떨어지면서도 내 수준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그 잣대에 안 맞는다고 투덜대는 이유는 뭘까. 아니면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해지고 제대로 된 쉼을 느끼지 못하는 데서 오는 급하고 섣부른 판단 때문일까. 급하고 섣부른 판단을 더 하지 않으려면 몸과 마음의 적당한 ‘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영민 울산대학교 첨단소재공학부 교수·한국재료학회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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