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고 나면 지는 일만 남게 된다는 것을
다하고 나면 지는 일만 남게 된다는 것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1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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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두고, 어느 외국인은 ‘동양의 진주’라 극찬한 적이 있다. 일본에는 아름다운 명승지가 많기로 유명하다. ‘일본 3대 절경’. 그것은 미야기현의 마츠시마(松島), 교토에 있는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 그리고 히로시마에 있는 이츠쿠시마(?島)다. 그중 하나인 미야기현의 아름다운 마츠시마를 보고 읊은 시가 눈에 띈다.

‘마츠시마여!/ 아아! 마츠시마여/ 마츠시마여!’(松島や/ ああ松島や/ 松島や, 田原坊)

기껏 17자의 음절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다. 소위 말하는 일본의 단시인 하이쿠(俳句)다. 18세기 에도후기 품위 있는 말을 잘 하는 해학가 타하라 보(田原坊, 1603~1868)가 익살스레 읊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감탄조의 표현이라 할까.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라 할까. 그 아름다운 절경에 할 말을 잃은 ‘절정’의 상태를 담아놓은 하이쿠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글의 작법이나 도자기 또는 예술의 세계에서 작가의 의도가 무아지경에 돌입할 때나 자연현상의 모습을 보고 완전 초월한 상태에서 ‘절정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다.

대개 ‘절정’이라는 말은, 가장 높은 정도의 것을 통칭해서 말하는데, 산의 ‘꼭대기’나 주식시세에서 최고 시점인 ‘상투’, 심지어는 일의 ‘클라이맥스’일 때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문학에서는 극(劇)이나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갈등요소가 최고조에 이르는 단계를 말한다. 점층법(漸層法)이라 하여 문장의 뜻을 점점 강하게 또는 크게 하거나 높게 하여 마침내 절정에 이르도록 하는 일종의 수사법이라 하니 흥미롭다.

어느 때는 성의학에서 쾌감의 절정인 오르가슴까지 격정적인 말로 바뀌기도 한다. 인간의 성감에서 극단적 표현으로 이어질 때다. 온다, 죽어버린다 아니면 하얀 개가 보인다, 터널 맞은편까지 왔다고 하면서 일성을 고하는 경우이다.

11세기 중국 송나라 즈음, 불교사상을 유교철학에 도입한 사상가 소옹(邵雍, 1011 ~1077)이 읊은 한시 중, 가슴을 치게 하는 시가 있다. 반쯤 핀 꽃봉오리를 자세히 보고서 말이다. 절정으로 가는 과정이 너무 아름다워 이렇게 표현했던 걸까.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노라/ 반쯤만 피었을 때’(美酒飮敎微醉後/ 好花看到/ 半開時, 소옹)

은근함과 기다림에 매우 관심이 가는 한시다. 아침 이슬에 깨어나는 꽃봉오리는 고우면서 예쁘다. 이슬을 채 털어내지 못하고 햇살을 한껏 받은 꽃봉오리. 수줍게 속내를 보이지만 허툰 몸짓이 아니라는 듯 야무지기 짝이 없다.

일반적으로 최고의 행복한 순간을 꿈꾸기 위해 활짝 만개한 꽃에 주목하게 되는 게 우리의 삶이다. 마냥 서둘러 만개하기를 바라는 가벼운 생각뿐이니 얼마나 허망하랴!

하지만 어느 누가 이러한 진리를 알겠는가. 다하고 나면, 지는 일만 남게 된다는 것을. 최고의 행복한 순간보다 ‘절정으로 가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을 정말 이제는 알 것 같다.

우리의 세상만사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삶의 충전 에너지를 분명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변화무쌍한 자연의 사계절이든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이든 너와 나의 인연이든 어느 하나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삶도 이같이 똑같은 이치가 아니겠나.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에세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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