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혼
황혼이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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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사이클을 즐기는 친구가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찻집에 들렀다. 커피 잔이 탁자에 놓이자 한 모금 마시고는 대뜸 “친구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친구와 눈을 맞추었다. “뭔데, 이야기해봐라” “이런 이야기하기 곤란한데, 어차피 알게 될 건데, 먼저 고백해야 할 것 같아서….” “뜸들이지 말고 해봐라.” 몇 번을 망설이던 친구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나 황혼이혼 했다”고 했다. “뭐, 뭐라고, 금방 뭐라 했나” 한동안 서로는 말이 없었다. 남의 일인 줄 알았던 황혼이혼을 친구한테서 듣고는 당황했다. 할 말이 없어서 “언제 했는데” 했더니 “2년 됐다.”고 한다. “그동안 말 안 했잖아” “뭐, 좋은 일이라고…”

친구는 필자와 함께 예비역으로 복학했고 졸업반일 때 결혼했다. 친구의 뜻밖의 알림에 당황한 것은 필자가 처음으로 친구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맡은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에게 몇 번이나 부탁하는 바람에 선고(先考)께서는 주례를 집전하셨다. 친구는 필자보다 두 해 연상이라 일흔이다. 친구가 떠난 후 ‘일흔에 황혼이혼이라…’ 몇 번을 중얼거렸다. “일흔에 능참봉”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친구가 그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친구는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잘 기른 아들들이 출가하여 가정을 잘 꾸려 나가고 있기에 의아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 황혼이혼 이야기가 나온 것은 오래전부터라고 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지금껏 친구 내외를 잉꼬부부로만 알고 있었기에 부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엄마와 아빠 사이를 철들면서부터 지금껏 지켜본 자식들이 황혼이혼을 둘 다 찬성했다는 사실이다. 홀몸노인인 필자로서는 두 아들의 행동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퇴근해서 한밤중에 안예은의 노래 홍연(紅緣)의 가사를 음미하며 몇 번 반복해서 들었다. “세상에 처음 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온다 했죠./ 당신이 어디 있든/ 내가 찾을 수 있게/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왔다 했죠. …”

가수 혜은이가 지난달 29일, 30년간 부부 사이였던 배우 김동현과 황혼이혼을 했다고 밝혔다. 혜은이는 1956년생이니 올해 65세이다. 친구의 황혼이혼 사연을 먼저 들은 터라 동병상련의 마음이 대신 들어 그녀의 노래를 일부러 찾아서 음미했다. “어느 꿈같은 봄날에/ 처음 그대를 만난 날부터/ 나는 알게 되었어요/ 사랑의 기쁨과 슬픔…. 오/ 당신만을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해/ 정말 사랑해….”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월이 흘러가면/ 그때야 뉘우칠 거야….”

당신만을 사랑하며, 또 정말 사랑한다고 노래 부른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나.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밤낮으로 소곤거렸을 것이다.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1758~1814)은 일찍이 풍속도 월하정인(月下情人)에서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라고 했다. 즉,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귀밑머리 쓰다듬고 합환주(合歡酒) 교배(交盃)에 백년가약을 맹세하던 꽃잠 추억을 서로는 이미 오래전에 까마득히 잊었나 보다. 하기야 아직도 겉보기 잉꼬부부는 희망인지 원망인지 ‘임의 팔을 빌어 베개 베고 고이 잠들 적에 새벽닭이 꼬끼오 우네, 뒷동산에 갈가지(→호랑이 새끼)는 무슨 일이 그리 바빠, 저 새벽닭 물고 안가나∼’ 이런 타령을 부른다. 그런가 하면 부창부수(夫唱婦隨),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 백년가약(百年佳約), 백년해로(百年偕老), 합환주(合歡酒), 원앙(鴛鴦), 이성지합(異姓之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등 숱한 덕담 격려를 반복하기도 한다.

태화강국가정원 삼호철새마을의 삼호대밭에는 현재 백로가 번식기를 맞아 둥우리 짓기에 바쁘다. 해 뜨자마자 삼호산으로 날아가 마른 나뭇가지를 골라 물어 나른다. 쉴 틈도 없이 온종일 물어 나른다. 저 백로 황혼이혼을 안다면 자식 키우려고 저렇게 열심히 둥우리 짓겠나, 묻고 싶다. 코로나19 때문에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밥돌밥’의 짜증스러움을 애교 섞어 말하더라도 취중진담(醉中眞談)이라 하듯 인생을 목적 없이 산다면 그때부터 결혼생활은 실패의 연속이다.

올해 나이 육십인, 결혼 30년 된 지인이 부부다툼을 할 때 아내가 남편을 향해 모질게, 반복해서 던지는 말이 있단다. “내 눈, 내가 찔렀다”, “내 두 눈을 확 빼 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제껏 이혼은 물론 황혼이혼도 생각하거나 염두에 둔 적도 없다고 했다. “베어 버리려고 하면 풀 아닌 것이 없고, 두고 보려고 하면 모두가 꽃이더라(若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라는 말이 있다. 또 “믿음이 앞서면 부부인생 백 년이 마치 여러 나라를 봄나들이하는 기분이다(赴信心而春行萬國)”라는 말도 있다. 모두가 살아가기 나름 아니겠는가.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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