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2020 역사교과서
얼빠진 2020 역사교과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2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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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과서들은 교육부의 ‘교육과정’ 지침에 맞춰 편집한 뒤 교육부의 검정심의와 각급학교 운영위원회의 선정을 차례로 거쳐야 선택이 된다. 현재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2018년부터 적용받고 있지만 역사교과서는 2016~18년의 국정교과서 파동으로 늦어져 올해 처음 선을 보였다.

올해 역사교과서는 『중학 역사1』(세계사),『중학 역사2』(국사) 각각 6가지와 『고등학교 한국사』 8가지가 검정심의를 통과했다. 이 교과서들을 대충 살펴보니 역사의 핵심인 ‘주체’와 ‘원동력’이 빠져 있고, 너무 황당해서 잠시 산책한다.

역사에서는 그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과거 국정교과서에서는 머리말에서 ‘국사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라 하고, 내용에서 ‘우리 민족은 배달민족이라고도 불리는 한민족’이라 하여 한민족의 역사교과서임을 분명히 했다. 2011년부터 사용된 검정교과서도 머리말에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으나 내용에는 ‘선사시대와 한민족의 기원’(고교 한국사, 천재교육)이라는 등 부분적이지만 민족이라는 단어와 민족 이름은 사용했다.

그런데, 올해 나온 중·고교 교과서의 머리말에는 ‘우리 역사’(중학 역사2, 지학사 등), ‘한국사는 오늘날의 한국이 형성되어 발전하기까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활동과 경험을 기록한 것’(고교 한국사, 미래엔)이라는 등 역사의 주체를 ‘우리’ ‘한국’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모든 교과서의 근대사에서는 ‘항일민족운동’ 등 우리 역사의 주체를 ‘민족’으로 보는 듯 간접기술에 그치고 있다.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의식한 ‘민족’에 대한 거부감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민족 역사의 원동력인 ‘민족정신’을 빼버린 일이다. 작년까지는 “고조선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웠다. 단군의 건국 이야기는 이후 우리 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민족의 단결과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중학교 역사1, 비상교육, 39쪽), “(단군왕검이 세력 확대 과정에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홍익인간)는 이념을 내세우며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해 갔다.”(고교 한국사, 미래엔, 16쪽) 등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사화를 소개하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도 소개하는 교과서가 많았다.

그러나 2020년판 중학교 역사2에서는 반 정도가 단군사화를 소개하면서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태백산 지역을 내려다보니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 등 해석된 내용만 소개하고 ‘홍익인간’이라는 단어는 빼버렸고, 고교 한국사에서는 이런 내용조차 보이지 않는다. 핵이 빠진 교과서인 것이다.

얼이 빠진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지난 세기 초 일제는 우리 겨레의 얼을 빼앗아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우리 역사를 축소·왜곡한 식민사학을 조작했는데, 광복 75주년이 되는 지금도 우리 교과서가 조선시대의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빠진 교과서라는 느낌이 너무 짙다.

박은식은 『한국통사』 서문에서 ‘나라는 형체, 역사는 정신’이라고 했지만 역사 속에 겨레의 얼 민족정신이 살아있을 때라야 옳은 말이 된다. 우리에게는 한강의 기적과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류, 특히 코로나19 사태 극복 과정에서 보여준 민족저력이 있다. 하루 빨리 민족저력이 포함된 바른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역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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