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래빗 -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 춤출 수 있으니
조조래빗 -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 춤출 수 있으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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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조래빗'의 한 장면.
영화 '조조래빗'의 한 장면.

 

때는 2차 세계대전 말, 독일에 사는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그토록 원하던 독일군 소년단 입단을 막 앞두고 있었다. 그의 꿈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것. 그 꿈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조조에게는 늘 히틀러가 상상 속 친구로 따라다녔다. 그러니까 소년단 입단처럼 큰일을 앞두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히틀러가 “뿅”하고 나타나 그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히틀러의 베프가 되려면 누구보다 유능한 병사가 돼야 했지만 소년단에 입단하자마자 조조는 살아있는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지 못해 ‘겁쟁이 토끼’, 즉 ‘조조래빗’으로 불렸다. 설상가상으로 수류탄을 잘못 던지는 바람에 큰 부상까지 입고는 결국 소년단에서 퇴출당하고 만다.

이후 치료를 위해 집에만 있게 된 조조. 참, 조조에게는 가족으로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가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혼자 있는 집에서 조조는 벽장 속에 몰래 숨어 지내던 한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엘사(토사민 맥켄지)였고, 유태인이었다.

그러니까 독일군을 피해 엄마가 몰래 숨겨주고 있었던 것. 얼마나 오래 동안 그곳에서 숨어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꿈이 히틀러의 베프였던 조조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니, 엄마가 대체 왜?! 과연 조조는 히틀러의 베프, 아니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와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학창시절 읽었던 고전 가운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이 글귀는 소설 속 주인공인 싱클레어에게 친구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이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됐던 건 한 개인의 성장을 ‘세계의 변화’라는 거대담론으로 다뤘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싱클레어는 알을 깨고 나오듯 친구 데미안의 도움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하나씩 깨뜨려가며 성장해갔다.

그건 <조조래빗>에서 주인공 조조도 마찬가지였다. 헌데 시작은 완전히 달랐다. 싱클레어의 시작점이 된 세계는 온통 선(善)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계였다. 공교롭게도 그 때 그의 나이도 대략 10살이었는데 그 세계는 이랬다.

부유하고 엄숙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싱클레어가 맞이한 첫 세계는 의무와 책임, 양심의 가책과 고해, 용서와 선의, 사랑과 존경, 성경의 말씀과 지혜가 있었다. 그러다 동네 불량배인 크로머를 만나면서 그 세계는 혼돈에 빠진다.

반면 2차 세계대전 한 가운데에서 전범국가인 독일 소년으로 태어난 조조는 첫 세계부터 잔인했다. 시작이 전쟁터였기에 조조의 선과 악은 처음부터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에게 절대선은 히틀러였고, 그렇다보니 꿈도 히틀러의 베프였던 것. 나치에 의해 길거리에 내걸린 시체들 역시 당연한 걸로 받아들였다. <조조래빗>은 어린 조조가 알을 깨듯 그 잔인한 세계를 깨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그걸 도와준 건 엄마였다.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사실 남몰래 유태인들을 도와주며 전쟁을 일으킨 나치의 독재에 항거하고 있었는데 그걸 조조가 대강 눈치챘을 무렵 엄마는 사랑보다 다이너마이트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아이답지 않아. 10살짜리가 전쟁을 찬양하고 정치선동이나 하다니. 애는 나무나 타고 놀아야지. 가끔 떨어지기도 하면서. 삶은 선물이야. 우린 그걸 축하해야 해. 우리가 살아있음을 신께 감사하면서 춤을 춰야 하는 거야.”

사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성장기는 악(惡)이 스며드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에게 멘토가 되어 준 친구 데미안의 이름이 데몬(악령)을 연상시키는 점이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동생을 죽인 살인자 카인을 더 두둔한 데미안의 파격적인 생각도 그렇다.

그리고 그가 싱클레어에게 보낸 편지내용 중 알을 깬 새가 향하게 되는 아브락사스는 바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데미안은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처럼 싱클레어가 스스로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 즉 ‘악해서 강한 자아’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렇게 개인의 성장이란 선과 악이 배합되는 과정인데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악이 스며들며 성장했다면 조조는 엄마와 엘사를 통해 선을 배우며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었던 거다. 마침내 자신의 첫 세계가 크게 잘못됐음을 알게 된 조조는 자신을 늘 따라다니던 히틀러를 창밖으로 “뻥” 차버린 뒤 엘사와 함께 춤을 추며 두 번째 세계를 맞이한다. 그렇다. 선악(善惡)이고 나발이고 우리들 인생에 춤과 노래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20년 2월 5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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