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도시디자인
500년 도시디자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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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인 1960년에 미국의 저명 도시계획가인 MIT(매사추세츠공대)의 케빈 린치 교수는 <도시의 이미지>라는 연구서에서 도시를 인식하는 방식을 통로(Path), 교점(Node), 랜드마크, 지역(District), 경계(Edge)의 다섯 가지 요소로 제시했다. 린치 교수가 말한 <패스>란 울산에서는 도심을 흐르는 태화강과 번영로, 삼산로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울산을 대표하는 패스인 이들 요소만 잘 계획하고 설계해도 울산의 도시이미지는 크게 달라지고 인상도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분석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21대 총선이 끝난 후 맞은 첫 주말에 태화강변을 걸었다. 다운동에서 시작해서 징검다리를 건너고, 구영교와 배리끝을 따라서 돌아보았다. 화창한 햇살 아래 강변 가득 핀 샛노란 유채꽃에 이끌려서 나온 듯한 가족들이 많이 보여 뜻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인데도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온 모습에서 사회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새삼 짐작이 되었다.

태화강변에 이처럼 산책코스가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멀리 염포동 성내삼거리부터 가지산 턱밑까지 수십 킬로미터 거리에 산책로며 자전거 길이 정비되면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태화강변에 접한 동과 리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 울산 전체 인구의 4할이 넘는다고 하니 태화강변 정비 효용은 굉장할 것 같다.

이런 방침에 따라 작년부터는 태화강 백리길에는 십리대숲을 확장한 <백리대숲> 조성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선 영조 때의 읍지 <학성지>를 보면, 지금의 오산대교 아래 내오산 부근에 몇 무의 대숲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태화강변에는 예로부터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내오산 일대에 지금처럼 대규모 대숲이 조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 오카다라는 일본인에 의해서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경제적 목적으로 대를 심었겠지만, 지금은 울산과 태화강의 상징이 되고 태화강국가정원 지정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숲은 여름철에는 백로의 보금자리가 되고, 겨울에는 유명한 떼까마귀의 서식처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산책길에 본 새로 심은 대나무는 강을 가리는 장막이 되고 있어서 과연 개념을 가지고 심은 것인지 고개가 갸웃해졌다. 산책로와 강 사이에는 키 큰 대나무를 열 지어 심고, 산책로와 아파트 사이에는 키 작은 대나무를 심었으니 주인공인 강은 가리고 풍경을 훼손하는 아파트는 오히려 돋보이게 하고 있어서 야릇하다.

문제는 강변 산책로뿐만이 아니다. 울산의 근본적인 문제는 강과 접한 구역의 토지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태화강변을 가로막고 서 있는 고층 아파트단지가 도시디자인에서는 큰 문제이다. 이런 아파트는 최소 20층 이상 되는 높이와 수백 세대는 되어 보이는 단지 규모, 시멘트 위에 바른 페인트가 주는 색감 등이 주변의 자연과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단지의 직선적인 외관형태나 색채, 재료 등은 강변에서 바라다보이는 원근의 산과 언덕이 그려내는 완만한 라인과 부드러운 4월의 신록과는 너무도 차이가 난다.

태화강 하구인 명촌교 부근부터 굴화 강변아파트까지만 보더라도 온통 아파트 천지다. 그러나 울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중구 구도심과 태화강 사이는 넓은 전원지대였고, 이곳을 지나면 비로소 긴 강둑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강변 전답이 모두 아파트단지가 되고 말았을까. 아마도 개발 당시에는 미개발지로 토지가격이 쌌고, 면적도 넓은 데다가 무엇보다도 강변으로 열린 시원한 조망이 아파트부지로 각광받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한 가지는 서울 강남일대의 아파트개발이 좋은 전례로 기억된 탓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이는 개발자의 입장이고, 울산시나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태화강변이 아파트로 뒤덮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국가사적인 경상좌도병영성만 해도 1417년에 완공되어 1895년 지방제도 개혁 때까지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고 보면 무려 478년간 그 자리를 지켜냈다. 태화강은 우리 조상들이 이 자리에 나타난 신석기시대 이전에도 흘렀다고 보면 7천년 생활터전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도시계획이나 설계 역시 적어도 500년은 내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5세기를 넘나드는 도시계획이 되려면 땅이 지닌 특성이나 적성을 잘 살려야 할 터, 우리 세대만 쓰고 말 것같이 토지이용계획을 결정짓고, 단편적인 구호에만 맞추어 대나무를 심을 일은 아니다. 아파트로 강을 숨 막히게 하고 키 높은 나무로 시야를 가려버리면 울산의 <패스>는 위기의 연속이다.

강혜경 울산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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