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따뜻한 공감이 절실한…
우리. 지금, 따뜻한 공감이 절실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2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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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박사방’,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한목소리를 모을 때까지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 했던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외면해 왔던 우리 사회의 무심함이 죄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 중에 상당수 미성년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 무거운 마음으로 그동안 학교 안에서 이루어져 오던 아이들의 조롱과 희화화, 혐오를 즐기던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부턴가 아이들 사이에서는 특정 대상에 대한 조롱과 놀림을 하나의 유희로 여기는 문화가 생겨났다. 개인 방송을 통해서 접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하는 표현들을 자신들만의 웃음 코드로 즐기는 아이들에서부터 그러한 표현이 분명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함께 웃어넘기며 용인하는 아이들까지.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다면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는 일들도 있어 왔다. 그러면서 점점 조롱과 놀림, 혐오의 대상이 주변인들에게까지 옮아가는 일로 번져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학교 폭력으로 그런 일이 공론화되었을 때 아이들은 ‘장난으로 한 일이었다’, ‘농담이었다’, ‘얘도 같이 놀았어요’라는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자신의 잘못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 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아이들의 의식 수준도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져 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조금 다른 사회, 조금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에게 행하는 조롱과 놀림은 점점 주변 아이들에게는 웃음과 놀이로 번져가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교사로서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특정 친구를 놀림과 조롱으로 감정적으로 자극하고, 물리적인 다툼을 유발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누구 하나 그 싸움을 말리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동안 쌓인 억울함과 분노로 씩씩거리는 그 아이에게 또 다른 조롱과 싸움을 부추기는 말들을 하며 마치 게임을 구경하는 듯 둘러싸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학교 폭력, 사이버 폭력 등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어떤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들 있다.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 또 그런 일들이 자신에게 어떤 제재로 돌아오는지에 대해서는 옛날에 비해서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도 빠삭하게 잘 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런 행동들이 문제인가? 우리 사회는 그런 행동에 대해 왜 처벌을 받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의 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마도 아이들이 머리로는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아졌지만, 정작 그 상황을 마음으로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의 밑바탕에는 공감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너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그 생각에서부터 시작한다면 누구에게도 ‘틀리다, 나쁘다, 이상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라면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면 그의 고통과 아픔을 함부로 희화화하거나 조롱할 수는 없을 텐데….

요즘 아이들 사이의 이런 조롱과 혐오의 문화를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얼마나 따뜻한 공감과 존중의 문화를 보여주어 왔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따뜻한 온기 속에서 자라나는 모든 새로운 생명체들 안에도 그 따스한 기운이 스며든다는 것을 우리 모두 되새겨 보는 봄이 되었으면 한다. 따뜻한 봄기운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스며들어 우리 사회 곳곳에 공감의 꽃들이 피어나고,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도 따뜻한 공감의 마음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강미연 약사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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