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워터스 - 잘 된 ‘달걀프라이’ 뒤에 숨겨진 거대한 진실
다크 워터스 - 잘 된 ‘달걀프라이’ 뒤에 숨겨진 거대한 진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1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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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 워터스' 한 장면.

자고로 ‘달걀프라이’라면 만국 공통 음식이 아닐까. 노른자와 흰자를 잘 살린 정통 달걀프라이든, 아니면 스크램블로 구워낸 것이든 식탁에 오른 달걀 프라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조리법이 간단해 누구든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점도 달걀프라이의 대중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

허나 아무리 ‘뚝배기보다 장맛’이래도 달걀프라이도 잘 구워 내야 더 맛있다. 특히 정통 달걀프라이는 가운데 노른자를 잘 살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달걀프라이가 프라이팬에 들러붙지 않아야 한다. 들러붙어 버리면 뒤집거나 접시에 담는 과정에서 노른자는 터져 작살이 나고 그게 흰자와 뒤섞여 못생긴 돌연변이 달걀프라이가 탄생한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렇게 되면 맛도 확 떨어지기 마련. 다행히 시중에는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이란 게 꽤 오래 전부터 존재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물론 프라이팬의 코팅이 벗겨지면 그런 참사를 겪게 되겠지만, 뭐 프라이팬이야 새로 하나 사면되니까.

근데 세상일이라는 건 참 정답이 없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들러붙지 않고 잘 된 달걀프라이가 절대적으로 정답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된 것. 바로 ‘토드 헤인즈’ 감독의 <다크 워터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됐다.

혹시 ‘테프론’이라는 화학물질을 아시는지? 이게 뭐냐면 탄소(C) 분자 8개를 이어서 만든 합성화학물질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비밀리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PFOA(PerFluoro Octanoic Ac id:과불화옥탄산), 혹은 C8이라 불렸던 이 합성화학물질은 물에 대한 반발성이 있어 처음에는 탱크의 방수 코팅제로 쓰였는데 기능성이 좋아 전쟁이 끝난 뒤 몇몇 회사들이 가정용에 도입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최고 화학기업인 미국 듀폰(DuPont)사도 그 중에 하나였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바로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 일명 ‘해피 프라이팬’이었다. 이후 이 획기적인 불침투 코팅제는 ‘테프론(Tefron)’이라 불렸는데 문제는 테프론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메스꺼움과 고열에 시달렸다는 것. 이유를 알고 싶었던 듀폰은 테프론을 담배에 섞어서 자사 노동자들에게 주며 피우게 했고, 그 결과 모두 입원했다. 이 때가 1962년이었다. 테프론은 직전 해인 1961년 출시됐었다.

아무튼 입원한 노동자들 대부분이 암에 걸렸고, 임신한 여성 노동자는 기형아를 출산했다. 듀폰사는 테프론 출시 1년 뒤 이 사실을 이미 알게 됐지만 PFOA에 대해 잘 몰라 규제 화학물질로 제한하지 않았던 미 환경보호국의 맹점을 이용, 돈이 된다는 이유로 계속 생산했다. 자그마치 40여 년 동안. 그런 테프론 생산에 제동이 걸린 건 세기말인 1998년이었다.

자신이 키우던 소 19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농부였던 ‘윌버 테넌트’가 대형 로펌 변호사인 롭 빌럿을 찾아오게 되면서 테프론의 독성에 대해 겨우 알려지게 된 것. 웨스트버지니아주에는 듀폰사의 테프론 매립장이 있는데 그 인근에 윌버 테넌트가 살고 있었다.

듀폰사는 규제 사각지대를 이용해 테프론 생산과정에서 생긴 먼지는 대기로, 그 폐기물은 땅 속에 마구 파묻어 물을 오염시켰다. 이에 롭은 거대권력인 듀폰사의 살인적인 행위에 맞서 무려 20여년 동안 고독한 투쟁한 벌였고, 그 결과 2017년 미국 법정이 듀폰에 6억7천100만 달러(약 8천억 원)의 배상을 선고하면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 공중파TV 뉴스에서도 이 사실은 보도가 됐었다.

지금까지의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고 <다크 워터스>는 이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전 세계인들은 무려 40여년 동안 테프론에 오염돼 온 셈. 참고로 테프론은 프라이팬 뿐 아니라 페인트, 섬유, 렌즈, 우비, 부츠 등 방수가 필요한 물품에 두루두루 쓰였다.

암을 유발하는 이 물질은 체내에서 분해가 안 된다고 한다. 이 말인 즉 테프론은 무려 40여년 동안 전 인류의 몸에 계속 축적됐다. ‘인류의 99%는 이미 중독됐다’는 영화카피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허나 더 큰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 테프론은 수많은 인공 화학약품 중 겨우 하나일 뿐, PFOS라 불리는 ‘이과불화옥테인술폰산’에는 무려 4천700가지의 합성화학물질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롭은 지금도 진실을 찾기 위해 듀폰 외 3M 등과도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렇게 진실은 늘 찾으려는 자의 것이고, 믿음보다는 ‘의심’에서 비롯되기 마련. 이집트학자인 G.Massey도 말했다. “권력이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 권력”이라고. 이제라도 ‘테프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돼 다행이긴 하지만 내 사랑 달걀프라이는 이제 어쩌지. 어쩌긴 어째? 이미 배린 몸, 이제부턴 못생긴 돌연변이 달걀프라이라도 사랑해야지.

2020년 3월 11일 개봉. 러닝타임 127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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