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헌원은 어느 나라 임금?
황제 헌원은 어느 나라 임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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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아주 단순한 의문인데 생각이 안 나다가 어느 순간 깨달을 때가 있다. 중국 역사의 시작에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말이 등장한다. 삼황 시절은 복희, 신농, 여와 또는 수인씨 때로, 사마천(司馬遷)도 전설의 시대라고 보고 역사를 오제본기(五帝本紀)부터 기술했다. 황제(皇帝) 헌원에서 요·순까지 이들이 한 일에 대한 기록은 많아도 어떤 나라 임금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오늘은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이 부분을 산책하겠다.

먼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내가 2010년 7월 국학원에서 개최한 한·중 학술대회에서 중국학자인 박계옥 박사가 발표한 논문 ‘중국 각 지방 황제 및 치우 관련 고사의 연원과 추이 고찰’에 대한 질의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형식절차인 공식 질문을 마치고 식사시간에 우리나라에서 국문학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우리말을 잘하는 발표자에게 “중국 문헌에 치우에 대해서는 구려의 천자, 동이의 수장 등의 기록이 있는데 한족의 시조로 모시는 황제 헌원은 어느 나라 임금이라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안다. 혹시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매우 당황해하면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천자가 다스리는 천하를 5개 권역으로 나누어 가운데 지역 제후를 황제(黃帝)라 하고 동쪽은 청제(靑帝), 서쪽은 백제(白帝), 북쪽은 흑제(黑帝), 남쪽은 적제(赤帝) 또는 염제(炎帝)라고 했다. 중국 기록에 헌원을 ‘황제(皇帝)’라고 표기했으니 천자가 아니라 중앙지역을 다스리는 제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다시 질문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우리 기록에는 나와 있다.”고 했더니 다음날 자료를 보고 싶다면서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먼저 삼국유사를 보여주면서 “우리 상고시대에는 환국(桓國)과 신시(神市)에 이어 고조선(古朝鮮)이 있었다. 그런데 중국 기록에는 하나라 이전의 나라이름은 나오지 않지 않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말했다. 그 다음,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를 펼쳐 ‘14대 자오지 환웅을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고도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살았다’는 내용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황제와 싸운 치우(蚩尤)다. 그 싸움에 대한 기록도 있다.”고 하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어 목차에서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의 환국본기와 신시본기, 삼환관경본기를 보고 이것이 바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국과 신시, 고조선의 역사기록이라고 설명하고, 신시본기에 들어가 ‘삼국유사의 신시인데 나라이름을 배달이라고도 불렀다. 우리나라 사람을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이 신시=배달의 후손이라는 의미다’고 설명한 후 히우의 기록 중 ‘철을 캐어 병기를 만들었다’ ‘황제 헌원과 탁록의 들판에서 싸웠다’ 등의 내용을 보여주면서 중국의 기록과도 맞지 않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이어서 황제와 치우의 싸움 관련 내용에서 10년간 73회를 싸웠는데 모두 치우천왕이 이겼다는 기록과 “그 와중에서 치우비라는 장수가 공을 서두르다가 죽었는데 사기에서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한 기록이 이를 말하는 것 같다.”는 내용, 그리고 “이에 헌원의 무리들은 모두 신하되기를 원하며 조공을 바쳤다.” “치우천왕은 즉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천하의 태평을 맹세했다.”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치우천왕은 전투에서 이겨도 상대를 죽이지 않고 받아들였다. 헌원도 한족들에게 명망이 높으니 죽이지 않고 중원지역을 다스리는 제후[黃帝]로 임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헌원은 어느 나라의 천자가 아니라 신시=배달의 황제(皇帝)인 치우천왕이 임명한 중원지역의 제후(黃帝)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혹 이 다음에 다른 기록을 발견하면 내게도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헤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황제(黃帝)의 나라에 대한 답은 받지 못했다. 나는 ‘혹시 자신들이 중심이고 우리를 변방의 오랑캐라고 보는 한족(漢族)들의 중화사상(中華思想)이 이런 모멸감을 감추기 위해 거꾸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이 역사산책의 재미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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