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 장등 박종대
할미꽃 / 장등 박종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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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사람이든

꽃이든 고개 숙인 모습은 아름답다.

 

봄에 피는 꽃 중에 할미꽃은 할머니 생각에 더 정겨운 꽃이기도 하다.

매년 4월경이면 자주색 할미꽃이 흰머리 살짝살짝 흔들며 양지바른 곳에서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난다.

어릴 적 할머니를 생각하면 꼭 생각나는 것이 배탈이 났을 때 할머니가 배를 어루만지시며 할미 손은 약손 내 배는 똥배라고 하시면 아픈 배가 신기하게도 하나도 안 아팠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의학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동양의학에서는 사람의 손에서 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 기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전해진다는 말이 있다.

젊은 남녀가 사랑을 시작해서 처음으로 손을 잡을 때 느껴지는 전기가 흐르듯 짜릿한 것이 아마도 기의 일종일 것이다.

이처럼 할머니의 손에서도 사랑의 기가 아주 강하게 나와서 어린 손자의 몸에서 반응한 것이 아닐까?

이해인 수녀의 ‘할미꽃’이란 시에 이러한 시구가 나온다.

‘손자 손녀 / 너무 많이 사랑하다 / 허리가 많이 굽은 / 우리 할머니 // 할머니 무덤가에 / 봄마다 / 한 송이 할미꽃 피어 / 온종일 연도(煉禱)를 / 바치고 있네’라고 쓰여 있다.

할머니의 자식 사랑은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넘치지만 그 사랑을 어디에도 뽐내지 않고 그저 고개 숙인 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배운 게 많다고 가진 게 많다고 고개를 쳐들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하지만 세상에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사는 할머니 같은 삶이라면 고개 숙여도 그 주변이 환한 빛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글=박동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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