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반려식물
우리 집 반려식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0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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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골산 입구에 버려져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율마였다. 한때는 누군가의 마당 한편에서 혹은 베란다에서 연둣빛 자태를 뽐냈을 텐데, 말라죽어서 버려진 것 같았다. 평소 율마를 좋아하는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산행에 나섰다.

두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려진 율마에게 또다시 눈길이 갔다. 마치 길 잃은 아이가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측은한 마음이 들어 차마 그냥 올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져가서 물을 주고 살려볼까?’ ‘아니야, 거의 다 죽은 것 같은데 가져가서 살리지 못하면 마음만 아플 거야.’

혼자서 갈등하다가 결국 집으로 가져와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날부터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율마에게 말을 걸었다. 햇볕이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는 곳에 두고 쌀뜨물을 받아서 매일 주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거의 낙엽 빛깔이던 잎들이 조금씩 연둣빛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건 기적이었다.

“우와! 어떻게 다 죽어가는 율마를 다시 살려냈지? 정말 신기해”

어차피 죽을 율마를 왜 가져왔냐던 딸아이도 감탄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어놓은 듯한 율마는 사랑스럽고 싱그러운 연둣빛이다. 잎을 손으로 비벼 숨을 깊이 들이쉬면 그 향이 마치 숲속에서 삼림욕을 하는 듯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율마의 매력은 모양새뿐만 아니라 피톤치드를 내뿜는 것에도 있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아토피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기관지, 폐, 심혈관을 강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율마는 통풍이 잘 되지 않으면 사람에게는 이로운 피톤치드가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되어 잎이 누렇게 변한다고 한다. 최근 뉴스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못하고 집안에서 지내다보니 가족끼리 갈등이 깊어져 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나무도 간격이 중요하듯 사람 사이에도 간격이 중요한가 보다. 서로에게 관심이 너무 지나쳐도 오히려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사나 율마의 생태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활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해야 하는데, 코로나19는 아직 끝이 안 보인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는 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다. 그럴 때면 저 율마도 자연바람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네모난 아파트 속, 네모난 공간, 좁은 화분 속에 갇혀 지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나 또한 평소 마음을 나누고 지내는 사람들과 식사는커녕 차 한 잔도 함께 마시지 못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율마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의 피로가 풀리며 우울했던 마음도 보름달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나에겐 반려식물인 셈이다.

마골산 입구에 버려져 있었던 율마. 뿌리도 거의 말라 있었지만, 나의 간절한 마음과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금씩 생명을 되찾았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본다. 밑에서 위로 천천히 잎사귀를 쓰다듬어 율마의 향기를 들이마신다. 상큼한 레몬향 같은 것이 느껴진다. 풀밭 위를 사뿐히 걸어가는 듯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서로가 많이 지쳐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을 잘 따르고 서로가 배려하고 인내한다면, 죽은 것 같았던 율마가 생기를 되찾았듯 우리도 머지않아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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