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팬데믹
느린 팬데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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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신문, 인터넷 게시판 등이 온통 코로나19로 난리다. 나라에서는 학생들의 개학도 연기시키고 교회의 예배, 법당의 법회, 성당의 미사 등 종교 활동도 자제를 권고하고, 지자체장들은 집회 허가도 잘 내주지 않을뿐더러 스포츠 경기는 관중 없이 진행하기도 한다. 사람이 직접 가서 물건을 사거나 밥을 먹는 곳들은 대부분 손님이 줄었고, 마스크도 우선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기 캠페인까지 하며 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총선 예비후보들은 자신을 알리고 정책을 홍보하고 선거운동을 해야 할 시기에 졸지에 지역 방역원이 되기도 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니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며 1968년 100만 여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독감, 2009년 한국에서도 약 80만 명 확진자와 270여명 사망자를 낸 신종플루에 이어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에 세계 각국의 수뇌부는 전시 혹은 그에 버금가는 상황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각 나라의 금융·주식시장은 연일 불안정한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여러 나라의 마트에서는 생필품이 동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병의 증상을 보면 그냥 독감이랑 비슷해 보인다. 이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분명 독감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게다가 치사율도 높지 않아 보이고, 실제로 완치한 사람도 상당히 나왔고, 특정 종교인들만 아니었다면 환자도 크게 발생하지 않았지 싶고, 어차피 매년 유행하는 독감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텐데 그냥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하는 의문점도 가질 수 있다. 매년 독감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의 수나 이번 코로나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자료를 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국내에서 독감으로 사망한 인구는 연평균 2천900명 남짓이다. 우리 옆 나라인 일본은 위의 이유 때문에 고의가 의심될 정도로 대처 없이 손을 놓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최대한 전파가 억제되는 ‘느린 팬데믹’ 상황을 만들어야 된다. 그 이유는 첫째, 이번 코로나19는 단순 독감보다 전염력이 수배는 강해 퍼지는 속도와 감염력에서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동선을 막지 못해 대량감염 사태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국가 면역체계인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고 갑작스레 늘어난 환자로 의료진의 감염도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의료진의 감염으로 의료진 부족이나 병원 폐쇄 상황이 발생하면 단순치료만 받으면 호전될 수 있는 환자들이 병실을 찾지 못해 혹은 병원이 마비되어 상태가 악화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둘째, 이번 코로나19는 단순독감보다 치사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독감의 치사율이 평균 0.1%미만인데 제일 상황이 좋은 한국조차 1.7%대의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WHO 평균 치사율은 5%이지만 무려 12%에 육박하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도 있다. 이런 무서운 현상을 단순하게 봤다가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면 끔찍하지만 누구를 먼저 살려야 될지, 결정을 내려야 될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위의 두 가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제일 중요하고 당연한 이유가 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인 인간의 존엄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적혀있다. 숨 쉴 때 옆에 있는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이 정의로운 가치는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이 수없이 많은 희생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이며, 국가는 이 가치를 지키고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단 한명의 국민이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답을 찾아 백신을 개발할 것이고, 그전까지 나라의 면역체계가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응해야 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불평 없이 모두를 위해 약간의 희생도 감내하는 멋진 시민의식의 조화로 우리는 ‘느린 팬데믹’ 상황을 성공적으로 만들었고, 대한민국은 나라의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손실도 많겠지만 국가와 국민, 국민과 국민이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자본이 증가한 사실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값진 보물이 되어 한층 성숙해지고 나라다운 나라를 크게 앞당길 것이다.

이미영 울산광역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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