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즈 - 영화, 가끔은 귀신들린
메모리즈 - 영화, 가끔은 귀신들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0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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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건 영화는 인간이란 존재의 영혼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깊이가 장난이 아니다. 물론 순수 재미를 위한 대중적인 작품들도 참 많지만 어떤 영화들은 감히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인간과 세상의 민낯을 다 까발린다.

TV드라마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잔혹한 장면부터 시작해 포르노 수준의 정사씬, 또 동성애 등등 현실에서 언급 자체가 금기시돼 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을 보여주는데 있어 영화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솔직하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또 어떤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언론마저 숨죽일 때 영화는 늘 진실을 향한 최후의 보루가 되길 자처했었다. 9·11 테러의 배후를 파헤치려 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나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상호’ 감독의 <다이빙 벨> 등을 떠올려보시길. 다큐멘터리 장르가 아니어도 영화라는 예술은 늘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려 했다.

그런데 영화의 위대함은 이게 다가 아니다. 영화는 가끔 예지력도 발휘해 왔는데 그럴 땐 마치 신내림을 받은 듯하다. 그러니까 귀신들린 것 같은데 대표적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들 수가 있다. 이 영화에서 ‘화상전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당시 세상의 반응은 “저런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허나 우린 지금 화상전화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 NASA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게 이듬해인 1969년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공황상태에 빠진 요즘, 개인적으로 그렇게 귀신들린 듯한 영화를 한편 더 보게 됐는데 그게 바로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1995년작 <메모리즈>다. 이 영화는 같은 감독의 전작으로 1988년작인 <아키라>의 후속작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키라>와 <메모리즈>는 현 사태를 정확히 예언한 영화 속 장면들로 인해 많은 이들을 소름 돋게 하고 있다.

우선 3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된 가상의 일본 도쿄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아키라>의 경우 시간적인 배경이 2019년인데, 이듬해인 2020년에는 도쿄올림픽 개최 예정이었다. 이건 영화 속 설정인데 놀랍게도 실제 현실에서도 올해(2020년) 일본 도쿄에서는 올림픽이 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판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유행)으로 취소되고 말았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도 일부 시민들에 의해 올림픽 개최 중지를 요구하는 낙서들이 등장하는데 신문에는 WHO(세계보건기구)가 일본의 전염병 대책을 비난하는 기사까지 등장한다. 현실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았나.

허나 이건 약과다. 후속작으로 옴니버스 형식의 <메모리즈>에서는 첫 에피소드인 ‘그녀의 추억’에 등장하는 인공위성의 이름이 바로 ‘Corona(코로나)’인 것.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이 돋았던 건 바로 ‘최취병기’라는 제목의 두 번째 에피소드였다.

스토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하던 제약회사 연구원 노부오(호리 히데유키)는 회사에서 개발 중인 신약을 해열제로 착각하고 먹었다가 잠이 든다. 그런데 깨어보니 연구소 직원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자신이 먹었던 신약 때문인데 사실 그건 미국의 투자로 일본에서 개발 중이던 생화학무기였다. 먹게 되면 몸에서 살인적인 악취가 발생해 마치 전염병처럼 주변 사람들을 죽여 나갔던 것. 노부오의 존재로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지자 결국 미국까지 확산저지에 나서게 된다.

현실에서도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 해도 대략 근접할 뿐 미래를 정확하게는 못 맞춘다. 그러니 이쯤 되면 이건 뭐, 신내림을 받은 영화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국은 막았을까? NASA에서 개발한 특수 우주복을 입고 노부오에게 달려들지만 못 막는다. 결국 영화 속에서도 판데믹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모든 게 노부오의 감기에서 비롯됐다는 것.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란 게 원래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감기에는 특효약이 없는 게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200여 가지가 넘기 때문인데, 그 중 30~50%가 리노바이러스고, 10~15%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다.

이번에 변종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말썽을 피우고 있는 그것. 덩달아 우리 몸 안에 있는 공포바이러스도 변종이 일어나게 됐다. 더 커지고 세졌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이라고 한다.

어쩌면 작금의 이 사태도 결국에는 ‘시간’이 약일지도. 해서 지금이 대략 ‘토요일’이나 ‘6일째’ 정도이길 간절히 바래본다. 내일이면 다 나을 테니.

2012년 12월 13일 개봉. 러닝타임 114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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