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아내 부엌시간을 줄여주리라 다짐
-109- 아내 부엌시간을 줄여주리라 다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0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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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독신생활을 청산하고 울산 송정지구에 있는 아파트에 새(?)살림을 꾸렸다. 30년 결혼생활 중에서 직업상 20여년을 떨어져 살다가 드디어 총각생활이 끝난 것이다.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가정생활과 결혼생활의 추억이 많이 부족하기에 중년의 동거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함께 다가왔다. 반면, 그동안 각자생활로 인한 편리함과 동거의 불편함을 어떻게 조화롭게 메꿔나갈지 또한 걱정도 따라왔다.

새롭게 살림을 차린 아파트 주변에는 호수공원도 있고 편하게 오르내릴 등산코스도 있다. 승용차로 조금 이동하면 바다를 바라보면서 커피도 마실 수 있어 정주여건은 꽤 좋다. 아내가 대전에서 이사 왔기에 주변 생활환경을 익히느라 분주하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북구문화센터의 강좌 몇 개를 함께 등록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몇 번 가지 못하고 포기했다. 이번 학기에는 울산대 평생대학원 서양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림을 취미로 나름대로 개인전도 열고 활동을 왕성히 했으나 낯선 울산에서 함께할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내가 대견하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퇴직하면 남는 것은 집 한 채와 소정의 연금, 그리고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 노후를 위한 준비가 중요하다. 남보다 조금 일찍 공직을 정리해서 그만큼 현역처럼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조그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수출입 기업의 세관 신고업무를 대행하는 관세사 일도 열심히 하고, 작지만 알찬 모임의 회장직도 두 개 맡았다. 그 밖에 공공기관의 위원회 활동을 병행하면서 울산에서 새로운 제2의 삶을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연말이면 애들 학자금과 아파트 담보대출을 갚을 요량으로 조금씩 납입하던 일부 보험금도 정리된다. 지금보다는 경제적인 면에서 보탬이 될 수 있어 하루하루 위안하며 열심히 버티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탓이라 울산생활이 즐겁고 바쁘다.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추하게 보이기 싫어 일에 대한 의욕을 가지지만 한계에 부딪힌다. ‘2020년 즐겁게 살기, 남편한테 큰소리치지 않기, 건강관리’라는 슬로건을 액자에 넣어 화장대 위에 비치한 아내에게 “어떤 남편으로 외조를 할까?” 늘 고민이다.

딸을 출가시키고 남편밖에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울산으로 이사한 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나 했더니, 어느 날 아내가 다리를 아파해 병원에 가보니 하지정맥이란다. 수술날짜를 잡고 돌아가는 길에 풀이 죽은 아내를 보면서 가장 빨리 “부엌에서 서 있는 시간을 줄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혼밥을 먹은 남편을 위해 “집밥을 해 달라”고 애걸한 것이 후회스럽다. 정성을 다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미안하기 그지없다. 누구보다 밥 먹고 설거지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아는지라 아내를 위한 첫 배려를 부엌에서 서 있는 시간을 최소화해주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휴일은 되도록 외식으로 식습관을 바꾸면 아내의 가사 일이 반으로 줄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나는 대로 아파트 주변을 걷고 주말에는 산과 들로 바다로 함께 손잡고 걸으며 아내 다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하루빨리 아내가 울산생활에 잘 적응하고, 그동안의 외로움을 잘 어루만지는 남편으로 거듭나기를 다짐한다. ‘뚝 뚝’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사랑하는 아내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져 좋아하는 그림활동이 더욱 왕성해지길 소망한다. 아울러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의 걱정거리도 빗방울처럼 뚝 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영균 관세법인 대원 대표관세사·前 울산세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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