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부부’
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부부’
  • 김보은
  • 승인 2020.03.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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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영웅에는 성관식 해병대 소령 선정

국가보훈처는 4월의 ‘독립운동가’와 ‘6·25전쟁영웅’으로 각각 오광선·정현숙 부부와 성관식 해병대 소령을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오광선(1896년 5월 14일~1967년 5월 3일) 선생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삼악학교를 졸업한 뒤 이웃 마을 출신 정현숙(1900년 3월 13일~1992년 8월 1일) 여사와 결혼했다.

독립운동에 큰 뜻을 품은 선생은 서울 종로에서 상동청년학원을 다니다 총독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재정난으로 1915년 문을 닫자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동흥학교 군사교관, 체육교사를 거쳐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했다.

또 1920년 12월 대한독립군단 중대장, 1930년 한국독립당 의용군 중대장, 1934년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 활동했고 김구 선생의 지시로 1936년 북경으로 파견돼 첩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 일본경찰에 체포돼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뤘다.

정현숙 여사는 1919년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해 화전을 일구고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독립군 뒷바라지에 헌신해 ‘만주의 어머니’라고 불렸다.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원으로 활동했고 1944년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임정활동에 참여하다 해방을 맞았다.

정부는 부부의 공훈을 기려 오광선 선생에게는 1962년 독립장을 수여했고 정현숙 여사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성관식 해병대 소령

 

성관식 해병대 소령은 1928년 광주에서 태어나 1951년 3월 수원농과대학을 졸업한 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 1일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1952년 9월 중공군이 대규모의 인해전술로 방어 중인 장단 사천강가 제36전진 진지를 포위 공격해오자 연대의 포병지원으로 적의 후속부대를 차단하고 교통호까지 진입한 적으로부터 진지를 사수하는 데 공을 세웠다.

특히 적의 포격으로 참호가 무너지면서 대원 5명과 매몰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무전기를 찾아 교신을 재개했고 고지를 포위하고 있던 격멸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성관식 소령은 해병대 교육단에서 신병교육에 힘썼으며 1958년 해병대 항공대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1958년 9월 안타깝게도 비행훈련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31세를 일기로 순직했다. 이에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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