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일자리·노동법 교육, 소상공인단체 위탁 바람직”
“소상공인 일자리·노동법 교육, 소상공인단체 위탁 바람직”
  • 김정주
  • 승인 2020.03.3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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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진 울산중소상인협회 상임이사/정책위원장
이승진(왼쪽) 울산중소상인협회 상임이사가 지난 28일 울산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종합식품동 점포 ‘오복상회’에서 점포주 최옥련 여사의 고충을 듣고 있다.
이승진(왼쪽) 울산중소상인협회 상임이사가 지난 28일 울산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종합식품동 점포 ‘오복상회’에서 점포주 최옥련 여사의 고충을 듣고 있다.

30년 삶의 터전 내주게 된 최옥련 여사

최옥련(75) 여사는 지난주 토요일(2월 29일)에도 습관처럼 자리를 지켰다. 건어물이랑 반찬거리를 파는 울산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종합식품동’(청과잡화동)의 남쪽 끄트머리 점포 ‘오복상회’가 최 여사가 30년째 지켜온 삶의 현장. 이곳을 안내한 이승진(45) 울산중소상인협회 상임이사 겸 정책위원장은 최 여사를 ‘청과잡화동의 산 역사’라며 허리를 굽힌다.

‘직접대출’이 시작된 울산상의 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울산센터 앞에는 지난달 25일부터 이틀간 새벽부터 긴 줄이 섰더라는 소문은 그 즉시 종합식품동에도 돌았다. 하지만 최 여사에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일 뿐이었다. 코로난가 뭔가가 난리를 다 쳐놓은 바람에 손님의 흔적이라곤 마스크 조차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30년을 지켜온 점포를 한시라도 뜰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려니 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이승진 이사는 문턱이 높고 신청할 자격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합식품동에 점포를 차린 60여 소상인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은행 신용등급이 낮고 사채 의존도가 높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잠이 안 와요.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되는데 갚을 외상값이 2천만 원이나 되니….” 그러면서 주섬주섬 펼쳐 보이는 거래처 외상잡책이 10권은 좋이 돼 보인다. 30년 전인 1990년, 터미널 이전과 함께 역전시장에서 하던 식당(‘오복식당’) 사업을 접고 울산시의 권유로 허허벌판이던 지금의 자리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최 여사. 듣자 하니 그땐 수의계약이다 뭐다 해서 온갖 감언이설이 다 동원된 모양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처지가 180도로 달라졌다. 관계법 시행령인가 뭔가가 싹 바뀌었다더니 작년 12월 말로 ‘유예기간 1년’이 끝이 났다고 찬밥신세가 되고 말지 않았는가. 올해 1월 1일부터는 사업자등록이 말소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종합식품동 상인들은 불법 상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동안 돌아간 이도 몇 분 있고 주인이 바뀐 점포도 몇 개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바닥의 터줏대감이라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50대 중반에서 70대 후반까지 이곳 점포 하나만 믿고 살아온 소시민들이다.

최 여사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예전엔 손님들에게 덤도 예사로 드렸지요. 약 3년 전부터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하더니 요새는 코로나까지 애를 먹이지 뭡니까. (점포를) 비워내라고 아우성이지만 단돈 한 닢도 없는데 지금 당장 어디로 나가란 말입니까.”

지난해 5월 9일 열린 사단법인 울산중소상인협회 창립총회.
지난해 5월 9일 열린 사단법인 울산중소상인협회 창립총회.

 

영세상인 요청… 협동조합 설립 준비

이승진 이사가 농수산물시장 종합식품동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다. 지난해 말, 이곳 상인들이 스스로 도움을 청해 온 것. 유예기간이 1년도 안 남았으니 자리 비킬 준비나 하라는 독촉에 겁이 난 상인들이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기댈 언덕’을 찾았다는 설명이 맞겠다.

이 이사가 현장의 소리를 듣고 절감한 것은 ‘정보 비대칭’(=시장에서 거래주체가 보유한 정보에 차이가 있을 때 그 불균등한 정보구조를 뜻하는 경제용어)과 ‘높은 문턱’이었다. “관계당국에서 상인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제때, 속 시원히 전해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힘없는 사람일수록 정책시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궂은일이 실은 ‘상인들의 시민단체’라고 자부하는 우리 협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지요.”

이 이사는 내면에서 다시 꿈틀거리는 소명의식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2009년,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중소상인들의 권익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울산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의 발족에 관여하던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제도 개선. 법령 제·개정. 소상공인 컨설팅, 사회적 공헌활동…. 이 무렵의 활동은 지난해 5월 중소벤처기업부에 ‘울산중소상인협회’란 이름으로 사단법인 등록을 하는 일에 요긴한 밑거름이 돼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추억이나 곱씹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바쁘다. 당장 서두를 일은 종합식품동 영세상인들을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일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을 설립하면 수의계약 승계 기간이 1년에서 5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인들이 그런 정보를 수시로 접했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들었다. 관에서 배짱 편한 대로 ‘정보 비대칭’ 현상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제스처라도 보여주었더라면 그나마 울분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주 사회적 협동조합 창립총회 열어 ‘기댈 언덕’ 완성

알고 보면 농수산물시장 안에서 가장 ‘영세’한 그룹은 종합식품동 상인들이다. 그나마 ‘수의계약’으로 30년까지 버텨낼 수는 있었지만, 당국이 경쟁입찰을 ‘법대로’ 밀어붙인다면 감당할 힘조차 지금은 없다.

불 난 자리에 다시 지은 바로 옆 ‘수산소매동’ 상인들 가운데 수완 좋은 이야 무려 6개나 되는 점포를 거머쥐었다고 자랑 하나 대단하다지만 이쪽 상인들에게는 그저 ‘꿈같은 얘기’,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서 ‘기댈 언덕’이 시급히 필요했다.

이승진 이사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밑그림을 거의 다 그려놓은 상태. 상인들을 수시로 만나 설명도 하고 동의도 구했다. 빠르면 이번 주 안에 발기인대회를 열고 다음 주엔 창립총회도 열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참이다. 상인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딸네 집에 얹혀산다는 최옥련 여사도 요즘은 그래서 살맛이 조금은 난다. “어째 잘 안 되겠습니까.”

울산중소상인협회의 정식 명칭은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울산지부’. 협회 정관 제2조는 지부의 목적을 이렇게 규정한다. “유통상인 및 중소 자영업자의 정당한 권리 옹호와 자생력 강화에 이바지하며, 자영업자 간의 단합과 유대를 강화한다. 지역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건강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경제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소비자와의 진정한 교류를 통해 지역 발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울산지부 회원은 종합식품동 상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울산 전역의 중소상인들을 포괄하고 그 수는 6천을 헤아린다. “젊음의거리상인회, 울산슈퍼마켓협동조합 같은 단체회원도 있지만 개별식당, 대리점, 편의점, 프랜차이즈, 식자재납품업체, 프리랜서사업자(강사, 자영업). 같은 개인회원은 더 많지요.”

이 이사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하고 싶은 말도 적지 않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제시한다. △‘코로나19 직접대출 정책’을 비롯해서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현장을 찾아가 홍보하고 그 자리에서 접수할 수 있는 공공형 일자리가 필요하고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줄어들면서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동관계법 관련 분쟁에 시달리는 소상공인의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는 최옥련 여사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를 정부에서 직접 수행하기 어렵다면 우리 협회와 같은 소상공인단체에 위탁해서 운영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향은 강원도 태백시.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다. 전공은 경북대에서 이수한 사회복지학.

울산경실련을 거쳐 울산시민연대에서 시민활동가로 일한 경력이 15년에 가깝다.

현재 지니고 있는 다른 직함은 자그마치 6개나 된. (사)나은내일연구원 이사, ㈜전통시장막걸리 기획총괄이사, 울산발전연구원 시민행복연구실 자문위원, 울산미래비전위원회 시민복지증진분과 기획조정위원, 울산시민복지기준 수립 추진위원회 총괄위원장, 울산사회복지협의회 사회공헌사업 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이 그것. 영락없는 ‘시민활동가’ 체질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지난 3월 11일 울주군보건소(왼쪽)와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울산중소상인협회 관계자들. 사진제공=울산중소상인협회
지난 3월 11일 울주군보건소(위쪽)와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울산중소상인협회 관계자들. 사진제공=울산중소상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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