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당신은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당신은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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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
고통을 대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번 마음에 낙인된 트라우마는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물며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지니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민 아니면 가여움? 그도 아니면 짐짓 모른 척하는 방관?

저자는 적극적인 ‘지적 개입’을 요구한다. 폭력 혹은 잔혹한 일을 당한 이들에게 직접적이고 재빠른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시 말하면 연민을 가질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감각을 퇴치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수전 손택은 미국 펜클럽 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1987~1989) 서울을 방문해 당시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 문인들의 석방을 촉구한 바 있으며 사라예보 내전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1993년에는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녀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혹은 벌어진 사건들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는 데 생전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녀는 2004년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죽기 1년 전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인사말을 통해 ‘잔혹한 행위를 단순한 이미지로만 이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1977년 발간된 ‘사진에 대하여’에 이은 연작물인 셈인 ‘타인의 고통’은 전쟁에 관한 사진 이미지들이 다수 첨부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면들도 여럿 있다.

로버트 카파의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이라든지 조 로젠탈의 ‘이오섬에서의 국기 게양’, 에디 애덤스의 ‘처형당하는 베트콩 포로’ 등의 사진 말이다. 그러나 이 사진들에 대한 진실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며 전쟁이란 이미지가 어떻게 교묘하게 조작되고 특정 권력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전쟁에 관한 기록이면서도 해석을 덧씌워 이미지를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중적 메시지가 숨어있다.

우리는 지구촌의 ‘재앙’을 ‘뉴스’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통해 구경한다. ‘구경’이라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단어를 배치한 것은 ‘양심’을 한번 두드려보기 위해서이다. 진정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특히 걸프전 이후 최첨단화된 ‘테크노 워’(techno war)를 TV 중계를 통해 보며 마치 게임 즐기듯 하지는 않았는가? 그런 전쟁을 보면서 동정심이나, 분노, 격분을 느꼈는가?

잔인하게도 언론들은 ‘피가 흐르면 앞쪽에 실어라’는 묵과된 지침이 있다. 즉 피 냄새가 나야 더 잘 팔린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 19 뉴스를 대하다 보면 생존자보다 오늘 또 얼마나 죽었나를 더 강조하지 않는가 말이다.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을 관음증 환자로 몰아간다. 나쁜 뉴스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전쟁이란 이슈는 얼마나 써먹기 좋은 기막힌 소재인가? 고통받는 육체들이 나뒹구는 전장의 이미지는 욕망을 부추긴다. 마치 끔찍한 장면을 외면하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재빨리 보고야 마는 야만성. 수 세기 동안 기독교 예술이 지옥의 묘사를 통해 보여준 욕망의 충족처럼 말이다.

n번방 사건을 재생해보자. 디지털 성 착취 가해자인 범인들을 찾아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짐짓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방관 혹은 저들이 저지른 폭력의 희생자들을 전시장에 걸린 전시물로 관람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익스피어의 희극 ‘폭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거지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지만, 죽은 인디언을 구경하는 데에는 한 푼의 열 배도 아깝지 않게 여기지’.

‘그들’과 ‘우리’라는 이분법이 낳은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나쁜 놈과 좋은 놈은 누가 구분해 놓았는가? 이편과 저편은? ‘타인의 고통’은 도무지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물음표만 따라오는 아주 불편한 책. 전쟁의 참상을 반복적으로 들이밀며 ‘당신은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를 묻는 저 형형(炯炯)한 눈빛의 수전 손택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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