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는 스스로 소외하는 지친 삶에 기생”
“현실 정치는 스스로 소외하는 지친 삶에 기생”
  • 김보은
  • 승인 2020.03.2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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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인 백무산 10번째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발간… 겨울비·정지의 힘 등 수록
“현관문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올 필요 없답니다 민주화가 되었답니다/ 민주화되었으니 흔들지 말랍니다/ 민주 정부 되었으니 전화하지 말랍니다/ 민주화되었으니 개소리하지 말랍니다(백무산 시인의 시 ‘겨울비’ 중에서)”

노동시인 백무산은 ‘한심한 시절’을 바라보듯 위선적인 현실 정치와 새 강자들의 언행에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단순히 냉소를 머금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시인은 피폐지고 고단한 현실을 잠시 숨 돌리고 가는 ‘정지의 힘’으로 극복하자고 설득한다.

백무산 시인이 5년 만에 창비에서 펴낸 열 번째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서다.

시인이 말하는 ‘정지의 힘’은 아무것도 안 하거나 아무것도 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그는 멈춤이야말로 반복되는 폭력적 일상에 저항해 우리가 원래 갖고 있던 자연적 감각을 되찾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시 ‘정지의 힘’ 일부)”

시인은 거듭된 혁명을 통해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나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는 그대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심지어 힘을 얻은 자들이 약자의 울분을 모방해 오히려 힘없는 자들의 저항 공간인 ‘광장’을 차지했다고 일갈한다.

백무산 시인은 출판사 인터뷰에서 “자기존중이 없는, 스스로를 소외하는 지친 삶이 있을 뿐이다. 현실 정치는 항상 그런 곳에 기생하고 그러한 현실을 재생산한다”면서 “문학(인)이 그러한 제도권 정당 정치에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위임하고 수동적으로 동원되는 일은 문학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존재로서 구체적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자각을 불러오고 다른 정치, 새로운 정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백무산 시인은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1984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초심’, ‘인간의 시간’, ‘폐허를 인양하다’ 등이 있다.

백 시인은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았고 현재 울산민족예술인총연합 문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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