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속초(狗尾續貂)’
‘구미속초(狗尾續貂)’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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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치악산(2012.8.7), 경남 창녕 우포늪(2013.9.24), 전북 무주 덕유산(2014.4.1), 전남 광주 무등산(2015.6.8), 충북 속리산·월출산(2016.4.25), 경남 지리산 피아골(2017. 2.13), 충남 대전 보문산(2019.12.13), 울산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외와마을(2020.3.11)…. 이상은 뉴스에 등장한 ‘노란목도리담비’의 관찰 시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상위 잡식동물 포식자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인 노란목도리담비는 전국에 분포하며, 특정 계절에 상관없이 관찰된다. 노란목도리담비(Yellow-throated mar ten, Martes flavigula)는 가족단위로 활동하며 고기를 주된 먹이로 하는 족제빗과 동물로, 목에서 몸통까지 온통 노랗다. 그 때문에 노란목도리담비 혹은 ‘황초(黃貂)’라 부른다. 얼굴, 다리, 꼬리는 부분적으로 짙은 검은색이다. 먹이는 청설모, 쥐, 멧토끼, 노루새끼, 멧돼지새끼, 꿩 등으로 다양하고, 계절에 따라 새알 따위를 먹기도 한다.

담비는 몸집은 작지만 족제빗과 동물이 그러하듯 사나운 포식자다. ‘호랑이 잡는 담보’란 속담에서 사나운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사냥할 때 담비는 여러 마리가 협동하여 사냥감을 추적한다. 담비의 한자는 초(貂)이고, 그 가죽은 초피(貂皮) 혹은 돈피(?皮)로 부른다. 담비는 호랑이가 없는 산에서는 최상의 포식자지만 개체수가 격감되어 현재 멸종위기관리종이 되었다. 초피가 한동안 호피(虎皮)만큼 권력층이나 부유층이 선호한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성종실록 55권에 인수대비의 위차와 궁의 중수에 대해 올린 안팽명 등의 상소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요즘 사대부의 집을 보면 날마다 사치를 일삼고 서로 다투듯 아름다움을 뽐내는데, 그 중에서 심한 것을 말하자면, 크고 작은 연회(宴會)에 그림을 그린 그릇이 아니면 쓰지 않고 부녀자의 복식(服飾)에 초구(貂?)가 없으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니, 이것으로 보면 풍속의 퇴폐를 더욱 알만합니다.”(성종 6년 5월 12일 경신 3번째 기 사·1475년 명 성화(成化) 11년)

연산군일기 46권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담비가죽[貂皮] 60벌을 들이라고 명했다. 이때에 상품을 내리는 것이 절도가 없었고, 궁인(宮人)들이 다투어 사치를 서로 숭상하여 담비가죽으로 치마를 만드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담비가죽 값이 매우 뛰어올라 한 마리 값이 면포 10필에 이르렀다.”(연산 8년 10월 8일 정미 2번째 기사·1502년 명 홍치(弘治) 15년)

영조실록 47권에는 “나라의 풍속이 간이(簡易)한 점이 조금 달랐는데, 지금에 와서는 사치하는 폐단이 갈수록 심해져서 여대(輿?)와 같은 천류(賤流)들도 모두 초피(貂皮)를 입으니, 이로 미루어본다면 부녀들의 사치는 반드시 더 심할 것입니다.”라는 기록이 있다.(영조 14년 2월 14일 병신 2번째 기사·1738년 청 건륭(乾隆) 3년)

《조선왕조실록》 인용 자료에서 본 것처럼 부녀자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치품의 중심에 초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기록에는 초피구(貂皮?=초피가죽으로 만든 옷), 초피관(貂皮冠=초피로 만든 관), 초피이엄(貂皮耳掩=초피로 만든 방한구), 초피허흉(貂皮虛胸=추위막이로 입는 초피가죽옷의 한 가지), 초피의(貂皮衣), 채단초피단오자(綵段貂皮短?子), 초피오자(貂皮?子=여성용 두루마기) 등으로 쓰임새가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담비의 꼬리 ‘초미(貂尾)’는 매미날개 ‘선익(蟬翼)’과 함께 조선시대 직위가 높은 관리의 관모(冠帽) 장식물로 이용됐다. 그 흔적이 ‘초선(貂蟬)’으로 남아있다. 초선은 담비꼬리와 매미날개를 말한다. 모두 고관(高官)의 관(冠) 장식으로 쓰였으므로 ‘높은 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구미속초(狗尾續貂)’는 개꼬리로 담비꼬리를 잇게 하는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 훌륭한 것의 뒤를 잇는 것을 말한다. 시대에 따라서는 담비꼬리가 모자라 개꼬리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때 생긴 말이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이었다(貂不足狗尾續)’는 고사다.

담비는 주로 산에 산다. 진도 지방 ‘방아타령’의 가사 ‘산에 올라 산초다리, 들로 나면 디딜방아, 물고 밑에 한새다리…’ 속의 산초는 담비의 다른 이름인 산초(山貂)를 의미한다. 담비는 담보(뽀), 비비, 초랭이처럼 같은 동물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으로, 탈춤에도 등장한다.

담보는 경상도에서 불리는 말이다. 비비는 담비의 울음소리이고, ‘초(貂)랭이’는 ‘호(虎)랭이’와 같은 용법의 쓰임이다. 특히 양반의 종인 초랭이는 양반을 골리는(약 올리는) 행동을 하며 영악하고 행동거지가 경망스럽다. ‘방정맞다 초랭이 걸음’, ‘초랭이 방정 굴뚝새’ 등에서 보듯이 방정맞은 촐랑이가 탈춤에서는 ‘초랭이’로 굳어졌다. 하지만 원형은 산초의 사나움을 의인화시켜 연희마당의 정화와 보호를 책임지며 삿된 것을 쫓는 벽사(?邪) 역할자이다. 초랭이는 호랑이와 함께 ‘무서운 존재’ 맹수(猛獸) 혹은 신수(神獸)의 의미로 탈광대연희에 등장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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