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왕의 평생교육 Letter]평생교육의 패러독스
[신기왕의 평생교육 Letter]평생교육의 패러독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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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미술관에 가면 조르주 쇠라(Geor ges Seurat)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빛 입자들을 색 점을 찍듯이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그의 작품은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 ‘그랑자트섬의 오후’는 센강 가의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풍경을 담고 있다. 예술과 전혀 무관하게 사족을 달면 그가 그림을 그렸을 산업혁명 초기 파리의 센강은 과거 울산의 태화강만큼이나 오염된 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새 나는 강가에서의 휴식조차 잘 차려입은 귀족이 누리는 호사였다. 지금처럼 모든 계층이 향유하는 주말의 휴식은 조르주 쇠라가 그림을 그렸던 시대가 훨씬 지난 뒤에야 비로소 민초들에게 주어졌다. 근대 복지국가 개념이 생기면서 노동시간은 줄었고 노동자들도 여가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근대 복지국가의 또 하나의 핵심은 소수 특권계층이 향유하던 교육이 민중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교육이 국가의 책무로 인식되었고 무상교육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평생교육은 이러한 근대 복지국가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평생교육은 교육을 학교교육으로 제한하지 않고 교육의 평등성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이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교육체계를 의미한다. 평생교육의 기초를 확립시킨 유네스코는 학습을 시민적 권리로서 선언하는 ‘학습권’을 채택했고 모든 이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5공화국 헌법에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는 조항을 처음 신설했다. 또한 헌법 3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1982년 말 사회교육법이 제정·공표되었고 1999년에 전면 개정하여 지금의 평생교육법이 탄생했다. 2007년 말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면서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광역단위의 시·도 평생교육진흥원이 만들어졌다. 헌법에 평생교육 진흥이 명시되고 국가-시도-읍면동으로 이어지는 국가평생교육체계를 갖춘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누구든지, 언제, 어디에서나 평생에 걸쳐 배울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조사한 우리나라 성인의 평생학습참여율을 보면 처음 통계조사를 시작한 2007년의 평생학습참여율은 29.8%에 그쳤지만 2019년 조사에서는 43.4%로 조사되었다. 45%를 약간 상회하는 평생교육 선진국의 평생교육참여율에 근접한 수준까지 도달할 정도로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2019년 울산의 25세 이상 성인 평생학습참여율은 35.8%로 우리나라 평균보다는 낮지만 크게 실망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학력별, 소득별 평생학습참여율 격차가 크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대졸 이상의 평생학습참여율은 평균을 훨씬 웃도는 46.6%였고, 중졸이하는 21.3%로 대졸이상 학력 소지자가 약 2.1배 더 평생학습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평균 가구 소득별로는 500만원 이상 구간에서 44.3%로 가장 높았지만 150~300만원 미만인 구간은 26.9%에 그쳤고 150만원 미만에서의 평생학습참여율은 8.0%에 불과했다.

구·군에 평생학습관이 속속 생겨나고 무료로 제공하는 평생교육 강좌도 늘어나고 있지만 소외계층과 취약계층에게는 국가와 지역이 제공하는 평생교육의 혜택이 크지 않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평생교육이 교육의 평등성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교육기회를 주려 했지만 평생학습 참여는 고학력과 고소득 계층에 집중되어 있고 정작 평생교육이 필요한 계층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학습을 사적으로 수행해 왔던 학력과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 공공평생교육이 또 하나의 선택지를 더해준 것에 불과했다면 지나친 말일까. 여유가 있는 사람은 강좌를 쇼핑하듯 선택하지만 생업에 바쁜 민초들은 평생학습을 할 여유가 없다. 그들은 평생학습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도 특별히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평생교육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그들에게는 평생교육에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다양한 제약이 존재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학습의 뒤에 숨어있는 민초들의 평생학습은 교육의 평등성을 지향하는 평생교육이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이다.

신기왕 교육학박사,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 평생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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