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이 할 일은 정치가 아니다
기초의원이 할 일은 정치가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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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이 공천을 거쳐 최종 후보자를 내놓으면서 선거 열기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거리는 한산해졌지만 얼굴 알리기에 열중하는 국회의원 후보들은 지역 곳곳을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후보자 못지않게 바쁜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지방의회 기초의원들로, 국회의원 선거 시즌이 되면 의정활동 시계가 멈춘다. 당원 모집을 비롯해 다양한 물밑지원에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4월 2~14일)이 되면 유세차량을 타고 지역을 돌아다니는 등 일선에서 선거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투입되는 것이 기초의원들의 역할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기초의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역 주민의 불편사항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행기관이 주민들의 혈세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이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기초의원이 어떤 정당 소속인지는 상관이 없다. 주민들이 원하는 소소한 것들이 기초의원 의정활동의 바탕이기에 중앙정치처럼 정치색이 고려 대상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초의원들은 정치를 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주민들은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려는 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현안이 쌓여있지만 선거가 우선시되고 만다. 이는 기초의원들을 ‘중앙정치’, ‘정당’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정당공천제 때문이다.

1990년 지방자치제도의 부활 이후 기초의원 선거 후보자까지 정당공천을 한 것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부터였다. 정당공천은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연계해 정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앙정당이 기초의원들과 책임을 함께함으로써 지방의정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당공천제는 밀실공천, 국회의원과의 종속관계 등으로 건전한 지방자치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기초의원 공천권을 사실상 지역 국회의원이 좌지우지하면서 기초의원은 지역 국회의원의 ‘심부름꾼’,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는 사회적 요구다. 지난 2009년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폐지에 86%가 찬성했고, 2017년 12월 전국 기초의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결과에서도 68.8%가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선진국에서도 지방정부 운영에 정당의 필요성 문제가 끊임없이 논란이 되면서 정당의 역할이 약해져 가거나 확산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은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 정당의 관여를 배제하고 있고, 일본은 외형적으로는 정당의 관여가 합법이지만 무소속 후보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정당의 영향력이 거의 없다. 또 영국은 우리나라처럼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9대 국회는 2012년, 2013년 정당공천제 폐지 법안을 6차례나 냈음에도 4년 내내 심의조차 하지 않아 결국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관련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방 발전을 위한 길이다. 요즘 시대는 다양성을 중요시하고, 빠른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맞춰 지역마다 특색 있게 발전하려면 자율성이 필요하다. 중앙 중심의 정당정치가 계속된다면 지방마다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변화에 대응하는 게 어렵다. 이는 정당정치의 한계이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의원부터 정당공천제를 폐기해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지역에서 인재를 찾는 등 지역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가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지방자치는 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초의원이 지금처럼 중앙정치를 위한 부속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일꾼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정치권이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를 재개해 빠른 시일 내에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김태규 울산 동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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