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투명성의 관계
불안과 투명성의 관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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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3월 19일 현재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176개국 21만9천294명에 달했고, 치사율도 4.09%를 기록했다. 초기에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중국이 코로나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모양새였지만 어느새 그 중심은 지구 반대편 유럽 국가로 옮겨갔다. 특히 이탈리아의 감염전파 속도는 초기 중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얼마나 많은 확진자가 발생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 한 달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마다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에 따라 구성원이 느끼는 불안의 크기나 대응방식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한 달 전인 2월 20일까지만 해도 필자는 코로나를 대륙의 다양한 식문화가 만든 중국만의 문제로 치부했다. 우한지역 봉쇄, 마스크 품귀현상, 부족한 의료시설, 늘어나는 사망자, 이 모든 것이 그저 국제뉴스에 불과했다. 그런데 신천지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월 22일 울산에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끊임없는 재난문자와 알람, 그리고 치솟는 확진자 수만큼 불안감도 증폭됐다. 연일 보도되는 마스크 품귀현상은 더 이상 중국 일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구할 길이 없다며 투덜대는 집사람은 공영홈쇼핑에서 사겠다고 아이들까지 동원해 전화를 걸었지만 부질없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늘어난 긴 줄과 시민들의 절박한 발걸음만큼 언론 보도도 늘어났다. 마스크가 없으면 죽을 수 있다고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마스크 3장으로 거의 열흘을 버텼다. 그리고 구하기 어려운 KF 마스크에 집착하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더 쉬운 방법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손 잘 씻고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실천하면서 면마스크와 정전기필터를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구글링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전성을 확인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코로나와 싸우는 자원봉사자와 의료진 그리고 노약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마스크가 부족해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마음도 편했다. 이후 정부가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형평성과 고통분담의 원칙을 살린 탁월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신천지로 인해 하루 평균 400명 이상의 확진자가 쏟아지던 긴박한 날들이 지나고 감염률이 수그러질 때쯤 해외 소식이 들려왔다. 유럽, 호주, 미국, 이란 등 전 세계적인 코로나 확산과 화장지 대란, 식료품 사재기까지 불과 며칠 전 우리가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고스란히 지구 반대편 그들에게 감염된 느낌이었다. 아니 해외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그곳은 말 그대로 전쟁터로 변하고 있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들보다 시민의식이 높은 것일까? 아니다. 우리도 같은 모습이었다. 메르스나 경주지진 때도 그랬고, 지금의 코로나19가 퍼져나가던 초기에도 그랬다. 그럼 뭐가 다를까? 필자는 정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비록 신천지 사태로 인해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정부의 대처능력은 탁월했다. 빠른 검사와 신속한 격리,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확진자의 동선 공개로 우리가 어떤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줬다. 이제는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의 방역시스템이 코로나19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fact)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그 시스템은 쉬지 않고 땀 흘리고 있는 많은 공무원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없었다면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적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그의 저서 ‘FA CTFULNESS(사실충실성)’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위험성이 계산되면 공포는 사라진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집어삼킬 것처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생각보다 침착하다. 국가에서 공급되는 충분한 정보로 위험성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의 공개는 시스템이 투명해야 가능하다. 결국 시스템의 투명성(tran sparency)이 정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고, 이것이 불확실성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잠재운 것이다.

여러 외신에서 한국의 방역시스템을 극찬하고 있다. 나 역시 방역의 관점에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투명성이 얼마나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지 보여준 전례 없는 교훈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 교훈이 사회 모든 분야로 퍼져나가길 희망해 본다.

김희종 울산발전연구원 환경안전연구실장, 환경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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