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세계항만으로 뻗어나가야죠”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세계항만으로 뻗어나가야죠”
  • 김정주
  • 승인 2020.03.1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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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의현 (주)우시산 대표
남구 무거동 ‘갤러리 카페 연’에서 출시상품을 만들고 있는 업사이클링팀과 변의현 대표(가운데). 	최지원 기자
남구 무거동 ‘갤러리 카페 연’에서 출시상품을 만들고 있는 업사이클링팀과 변의현 대표(가운데). 최지원 기자

 

‘고래 뱃속으로 들어갈 폐플라스틱으로 고래인형을 만든다.’ 이 기발한 발상이 현실의 옷을 입었다. 그 중심에는 사회적기업 (주)우시산을 5년째 이끌고 있는 변의현 대표(40)가 서 있다. 울산 사람이라면 그다지 귀에 설지 않는 말 ‘우시산’은 ‘울산’의 옛 지명.

사실 그는 울산대 역사문화학과(1997~2005)를 나온 역사학도다. ‘우시산’이란 이름이 그에게 더 친근하고 애착이 가는 이유이기도…. 그러나 그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외도를 걷는다. 언론인의 길이었다. 울산매일에서 8년, ‘뉴스1’에서 2년(2005~2014)을 머물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언론밥’ 맛에 길들여진 셈이다.

실버바리스타 카페로 사업 개시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큰맘 먹고 (주)우시산 대표로 변신했다. 2015년 11월이면 4년4개월 전의 일. 하지만 그 사이 이뤄낸 업적은 실로 ‘괄목상대(刮目相對)’ 그 자체다. 첫 출발은 미약했다. 자격증을 가진 ‘실버 바리스타’ 세 분이 ‘살림밑천’의 거의 전부였으니까…. 그래도 ‘카페 연(緣)’ 간판을 호기 있게 걸었다. 아직도 보금자리나 다름없는 남구 무거동 대학로 147번길 86 건물의 2층이 바로 그 자리. 변화라면 간판이름이 바뀐 일로, 첫 이름에 ‘갤러리’자가 하나 더 붙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카페(커피숍)가 처음엔 우리 한 곳뿐이었는데 차츰 가까이에 세 군데나 더 생기면서 경쟁이 불붙은 거죠. 한 카페는 꽃미남까지 대령하는 바람에 여자 손님들 많이 빼앗겼고….” 그러면서 멋쩍게 웃어넘긴다.

변신을 꿈꾼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름을 ‘갤러리 카페 연’으로 바꾸고, 동네 아줌마들의 취향을 저격할 겸 문화공연도 하고, 미술·음식 강좌도 차렸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에게 일자리 훈련 기회도 주었다. 따로 꾸민 공간에서 중고 재봉틀 2대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고래모양 열쇠고리. ‘고래’와의 연결고리가 이때부터 생긴 셈이다.

SK그룹과 남구청, 든든한 버팀목

사업 확장의 흔적은 대부분 남구청이 도와준 ‘오프라인 매장’ 수에서 읽을 수 있다. ‘갤러리 카페 연’ 외에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의 어린이체험관과 고래문화특구의 아트스테이 ‘마을행복공방’, 고래박물관 기념품점도 (주)우시산 호적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 하지만 현재 문을 연 곳은 ‘갤러리 카페 연’ 단 한 곳뿐. 다른 사업장은 코로나19 난리를 피해 3주 전 금줄을 쳐야만 했다.

변의현 대표를 뒤받쳐주는 사업동반자는 자원봉사자를 빼면 모두 10명. 실버 바리스타 세 분(여 2, 남 1)과 ‘고래인형 제작’으로 존재감을 키운 ‘업사이클링(upcycling)’ 팀의 일곱 분이 엄청난 자산이다. 알고 보니 업사이클링 팀 대부분은 변 대표의 울산대 후배들. UNIST 출신 디자인 담당과의 호흡도 척척 맞출 줄 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그것도 혼자 힘으로 사업영역을 넓힌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 기댈 언덕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SK이노베이션과 그 자회사 SK에너지, SK종합화학이 기꺼이 도맡아 주었다. “창업 첫해(2015년)에는 창업지원금 2천500만원을 선뜻 후원해주셨고, 지금도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죠.”

그뿐만이 아니다. 그 뒤로도 사회적기업 성장 지원사업비로 2천500만원, 크라우드 펀딩을 위한 컨텐츠 제작비로 1천만원을 더 지원해 주었다. ‘SK이노베이션 전문 보도채널’인 에서는 우시산 지원사업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고, 홍보와 마케팅, 법무·세무·노무에 이르기까지 경영 컨설팅이라면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다.

플라스틱이 죽인 고래…고래인형 모티브

(주)우시산 급성장 비사(秘史)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앙증맞은 ‘고래인형’. 그러나 그 재료는 뜻밖에도 천연소재가 아닌 ‘플라스틱’이다. “울산을 찾는 대형 선박들이 쓰다 버리는 플라스틱을 따로 모아서 재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하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고래인형이었죠. 2018년 12월로 기억됩니다만, 폐플라스틱을 잔뜩 삼키고 죽은 고래의 사진이 뉴스와 함께 외신을 타던 때가 바로 그 무렵일 겁니다.”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바다를 살리고 고래를 구하자(Save the Ocean, Save the Whales)!” 슬로건 역시 탁월했다. ‘환경’ 콘셉트가 (주)우시산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혜를 모은 끝에 폐플라스틱으로 ‘고래인형’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폐플라스틱을 모으고, 분류하고, 세척하고, 잘게 부수고, 플라스틱 솜과 천(원사와 원단)을 만들고, 디자인을 입히고, 인형으로 꾸미는 복잡다단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도 SK그룹의 도움 앞에서는 맥을 출 수 없었다.

‘노인 일자리’를 겨냥해 첫걸음을 뗐던 (주)우시산은 이미 단순한 ‘리사이클링(recycling)’ 업체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었다. 환경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update+recycling) 업체’의 이미지를 확실히 굳혀가고 있었던 것. 이 무렵 출시한 제품에는 에코백과 티셔츠도 있었다. 요즘도 변 대표는 ‘SAVE WHALE’(고래를 살리자)란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즐겨 입고 다닌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우시산의 고래인형과 그 본뜻은 정부도 움직이고 만다. 지난해 장생포문화특구 빈터(옛 미포조선 자리)에서 열린 ‘바다의 날’ 행사에 초청받아 부스까지 배정받을 기회를 얻었던 것. 지난해 초엔 고래 디자인 텀블러와 머그컵 생산도 개시했다. 1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에 흔쾌히 동참하려는 의지가 작용했다. SK이노베이션과 UN환경계획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아·그·위·그(I green We green) 캠페인에 동참하는 의미도 있다.

‘일제가 씨 말린 독도강치’ 신제품으로

최근에는 새로운 제품에도 눈을 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씨를 말린 ‘독도 강치 인형’이 바로 그것. 이 재료 또한 폐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한 점에서 고래인형과 다르지 않다. 아직 강치 암컷인 ‘밤색’ 한 가지만 출시했지만 여력이 생기면 강치 수컷인 ‘회색’도 나란히 내놓을 참이다.

어찌 보면 ‘독도 강치 인형’은 대학 전공과도 무관치 않다. 변 대표는 그래서 재미가 있고 보람도 느낀다. ‘일제의 강치 수탈’이라는 역사적 사실도 널리 알리면서 환경도 보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실버 카페에서 시작한 우시산을 세계에서 알아주는 환경 관련 사회적기업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특히 폐플라스틱은 재활용 안 하면 태워 없애야 하는데, 그 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유해물질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그는 대기오염, 지구온난화, 기후위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창 일할 나이인 변의현 (주)우시산 대표. 그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 “항만의 폐플라스틱을 모아 재활용하고 업사이클링 단계까지 끌어올린 일은 우리 울산이 처음일 겁니다. 이 뜻있는 사업이 부산과 인천, 나아가 세계의 항만으로도 뻗어나가게 하는 것이 제 새로운 꿈입니다.”

지금은 범서읍 천상리에서 살고 있지만 태어난 곳은 남구 야음동. 그러나 아직도 미혼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그런데 미소에 조금도 구김살이 없다. 그의 인생악보에 ‘꾸밈음’이란 게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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