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스루(drive-thru)’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15 2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과’, ‘관통’이란 뜻도 지닌 영어단어 ‘thro ugh’(스루)가 다른 단어를 만나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1960년대에 유행한 ‘see-through fashion’ (시스루 패션)이 대표적 쓰임새이지 싶다. 이때 ‘see-through’는 ‘속살이 비치는’이라는 의미. 최근에는 지구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가 이 단어를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drive-thru)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러냈다.

외신기자들이 깜짝 놀라고, 슈피겔지(Der Spiegel=독일의 주간 뉴스잡지)가 극찬하고, 영국이 즉시 따라오고, 미국 트럼프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도입 의사를 밝히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시름이 깊어진 프랑스 마크롱도 그 효율성을 인정한 코리아의 명물 ‘드라이브 스루’! 며칠 전 대구 동구보건소 관내의 ‘드라이브 스루’를 다녀왔다는 ‘안나 김’씨는 방문후기에서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으나 완전대박”이라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우리 중구와 동구에서도 일찌감치 받아들인 이 ‘깜짝 대박’은 언제 어디서 유래했을까?

어떤 이는 ‘스위스’라면서도 그 근거는 대지 못한다. 그 대신 “코로나19 물렀거라!” 하며 위키백과를 인용한 ‘특허청발명기자단’의 설명이 제법 그럴듯하다. 설명에 따르면 국립국어원은 이미 2015년 1월에 ‘드라이브 스루’의 다듬은 말로 ‘승차구매’ 또는 ‘승차구매점’을 쓰자고 제안한 바 있다. 유명 커피숍 상호에 ‘DT’(=drive-thru)가 붙어있다면 승차구매점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최근의 코로나19 시국에는 ‘차량이동형 선별진료소’, ‘승차진료소’로 그 의미가 살짝 바뀌었지만….

믿을만한 작성자는 미국 패스트푸드 연쇄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의 출현시기를 ‘미국 갱스터들의 황금기’였던 1930년으로 본다. 그 무렵 금융거점도시의 하나였던 세인트루이스의 ‘그랜드 내셔널 은행’에 입금만 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창구를 만든 것이 시초라는 것. 쇠창살이 달린 이 창구에서는 상주직원이 현금만 건네받을 뿐이었지만 직원의 행동이 ‘멋있다’고 느낀 부유층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는 1947년 미국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의 ‘레드 자이언트 햄버그’가 처음 도입했다. 특히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고속도로 ‘루트66’에 자리잡은 덕분에 접근성이 좋았고, 그래서 금세 이 지역의 명소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장거리 운전으로 지친 운전자들에게 드라이브 스루는 시간도 아끼고 허기도 면하게 해주는 신성한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한다.

‘루트66 혁신’이 성공을 거두자 드라이브 스루 매장은 1950년대부터 폭발증가세를 보인다. 1970년대에 뛰어든 맥도날드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기업으로 성장한 덕분인지 후발주자답잖게 이 분야의 선두주자 자리를 벌써 굳힌 상태. 국내에서는 1992년, 맥도날드 부산 해운대점이 드라이브 스루의 ‘원조’ 자격을 맨 처음 따냈다. 이를 발판으로 맥도날드는 현재 전국 매장 430여 곳 가운데 220여 곳에 드라이브 스루를 갖출 정도로 몸집을 불릴 수 있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지진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는 ‘필로티(pilotis) 구조’가 ‘승차구매점’ 설치에는 그저 그만이라는 것. 우리네 소비경제가 바닥을 치고 되살아나면 ‘1층이 주차장인 빌라 건물’의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간 ‘드라이브 스루’란 단어는 코로나19의 세계적 창궐에 때맞춰 코리아의 ‘선진의료’를 상징하며 부흥의 고속도로에 오른 느낌이다. ‘코로나19형 드라이브 스루’가 세계만민 치유의 상징어로 대접받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