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놈, 동도지(東桃枝)로 치기 전에…
코로나19 이놈, 동도지(東桃枝)로 치기 전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08 1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주군 웅촌면 천성산 자락에는 고찰 운흥사가 있다. 그 아래 반계마을에는 운흥사의 기운을 염두에 두고 이름을 붙인 운흥요가 있다. 3년 전 겨울, 운흥사 주지 야은 스님과 함께 운흥요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속마음으로는 도자기보다 마당 한편에 고목으로 자란 만첩백도화(萬疊白桃花·이하 ‘백도화’)에 관심이 있었다. 주인과는 구면이지만 오래간만에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시선은 백도화나무 주변에서 뗄 수가 없었다. 진심을 이야기했다. “자목이 없습니다. 찾아보시죠.” ‘없다’는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양해를 구한 터라 이리저리 머리카락의 서캐 참빗으로 훑듯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이윽고 주먹만한 돌무더기에 시선이 쏠렸다. 돌 밑에 갈색을 띠고 이쑤시개만큼 가는 것이 깔려있었다. 돌을 치웠다. 아니나 다를까 백도화 어린 묘목 한 그루가 돌무더기에 깔려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콩나물 길이로 버티고 있었다. 어린 묘목을 젓가락으로 도토리묵 집듯 어렵사리 캐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 적응해 살겠다고 직근을 제키만큼 내렸다. 잔뿌리만 남겨두고 직근을 미련 없이 잘랐다. 화단에다 옮겨 심고 보호가림을 둘러줬다.

금세 일 년이 지났다. 다시 캐내 화분으로 옮겼다. 문익점 선생이 목화를 키우듯 애지중지 정성껏 길렀다. 나무시장에서 쉽게 살 수도 있었지만 굳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2년 동안 크는 대로 두고 보았더니 이 녀석은 제 세상 만난 듯 휘쟁이 엉킨 머리카락처럼 사방으로 가지를 뻗었다. 달포 전 모임에 나오신 차산(此山) 선생님을 차로 댁에다 모셔드렸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마당에 꾸며진 비닐하우스 속에 잘 가꾸어놓은 분재가 확 눈에 들어왔다. 한편에서는 그토록 좋아하는 홍도화가 보란 듯 능수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순간 홍도화가 나에게 “자태 한번 보아주세요”라고 한 마디 던지는 듯했다. 언뜻 두루미 키만큼 훌쩍 커 버린 토굴의 백도화를 생각했다. 내친김에 차산 선생님께 백도화나무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날짜를 정해주셨다.

그날이 왔다. 그동안 아까워 차마 자르지 못해 천방지축으로 자란 백도화나무가 전문가 앞에서만큼은 다소곳해 보였다. 차산 선생님은 나뭇가지를 이리 당기고 저리 살피시더니 전정(剪定)을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서려니 선생님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은 애써 길러놓은 나무 가지를 과감하게 쳐내는 것을 보면 아깝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하셨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백도화나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침내 한 시간에 걸친 철사걸이 작업이 끝났다. 수형이 제법 능수 모양으로 잡혔다. 앞으로 6개월이 지나면 자리를 잡을 거라고 하셨다. 무턱대고 키운다는 것이 부질없음을 느꼈다. 그 뒤로 나고 들며 볼 때마다 흐뭇했다.

사람도 나무도 배움이 있어야 한다. 나무의 수형 잡기가 어쩌면 사람의 공부와 같을지 모른다. 날이 갈수록 가지마다 작은 꽃눈이 서캐처럼 달라붙더니 두어 번 천상수(天上水) 봄비를 맛보고는 깍지벌레만큼 커졌다. 어제 저녁 이슥토록 비가 왔다. 오늘 새벽 어둠속에서 ‘삐∼’ 하고 음산한 울음을 우는 개똥지빠귀가 삼월 초순의 새 관찰 새벽길을 안내했다.

오늘 떼까마귀가 잠자리에서 먹이터로 날아나가는 시각은 여섯시 십 분이었다. 해가 뜨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시선이 백도화에 먼저 갔다. 가까이 다가서니 꽃눈은 면봉 크기에서 엠보싱으로 부풀어 있었다. 문득 함월산 손골새 너머 도화골의 도화 소식이 궁금했다. 춘치자명(春雉自鳴=봄철에 꿩이 스스로 울다), 봄 꿩이 춘흥에 겨워 구설수(口舌數)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이따금 울기 때문이다.

도화(桃花)는 복숭아꽃의 한자어다. ‘도화’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도화녀(桃花女), 동쪽으로 자란 복숭아 가지 동도지(東桃枝), 도화살(桃花煞) 등에 들어있어 낯설지 않은 단어다. 명리학에서 도화살은 의미가 부정적이지만, 민속에서 복숭아나무는 귀신과 잡귀를 쫓는 존재다. 홍만선은 복숭아나무를 백 가지 귀신을 물리치는 나무 ‘선목(仙木)’이라 했다. 복숭아나무가 역신을 쫓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하는 것은, 옛날에 귀신의 우두머리가 복숭아나무에 맞아 죽은 뒤로 귀신들이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는 옛 이야기 때문이다. 이제현은 ‘익제난고’에서 나쁜 기운을 복숭아나무 가지로 두들겨 패서 물리쳤다고 했다. ‘용제총화’에는 복숭아나무 가지로 빗자루를 만들어 연말에 잡귀를 몰아내고 새해를 맞이했다고 했다.

민속에서 복숭아꽃과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는 벽사 기능과 함께 장수를 상징한다. 복숭아 가지인 동도지, 처용이 쓰고 있는 사모에 장식된 도핵(桃核)에서 보듯 도화는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闢邪)의 도구로 쓰인다. 울산에는 도화골, 처용무, 동도지가 ‘천지 삐까리’다. 필자의 토굴에는 문수산의 벽사 정기를 받은 백도화도 두 그루 심어져 있다.

‘코로나19’ 이놈들, 일산(日傘) 든 도화장군(桃花將軍)을 한번 모셔 보아라. 그리고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곤장을 치기 전에 알아서 슬슬 떠나거라.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사바하!’ 빨리빨리 율령(律令)과 같이 달아나거라!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