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고추장 보관관리 사업부터 시작할 거예요”
“된장·고추장 보관관리 사업부터 시작할 거예요”
  • 김정주
  • 승인 2020.03.0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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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마을기업 ‘(주)장하다 옹기마을’ 대표
2018년 5월 울산옹기연구소 전시실에서 열린 ‘김미옥 제2 옹기전’에서 선보인 쌀항아리. ‘여인’이란 이름이 붙은 옹기작품이다.
김미옥 마을기업 ‘(주)장하다 옹기마을’ 대표

외고산마을의 작업실 겸 전시실

17년의 집념이 외고산 옹기마을에 손맛 진한 마을기업을 깃들게 했다. ‘(주)장하다 옹기마을’. 이름부터 호기심을 재촉한다. 화제의 주인공은 외고집 ‘작가정신’ 하나로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는 김미옥 ‘(주)장하다 옹기마을’ 대표 겸 울산옹기연구소 소장(56)이다.

옹기마을 입구를 지나 옹기박물관 쪽으로 몇 발짝 옮기다 보면 길 오른쪽에 3층 높이의 하얀색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이 김 소장의 집념이 응집된 울산옹기연구소(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길 8-10) 건물. 2013년 5월 문을 열었으니, 지은 지 만 7년이 다 돼 간다.

지난달 28일 오전. 이날따라 옹기마을은 외진 산골동네처럼 고즈넉했다. ‘코로나 사태’가 뒤집어놓은 마을 분위기. “나이 드신 분들은 낯선 분이라면 아무도 안 만나려고 하세요. 코로나 때문에…” 김 대표는 길손을 ‘화이트 하우스’ 1층으로 안내했다. 옹기연구소 회의실 겸 전시실로 사용되는 대여섯 평 남짓한 공간이다.

전시실 한쪽 모서리에 수줍은 듯 입을 다문 동글고 아담한 옹기 하나가 시야에 잡혔다. 염주 장식을 두른 밤색 옹기 주둥이 부분이 흡사 여인네 주름치마다. 지지난해 5월 초 바로 이곳에서 열린 ‘제2회 김미옥 옹기전’에서 첫 선을 보인 김 대표의 애장품. “닮은꼴 항아리 한 점이 집에도 있는데, 제가 제일 아끼는 작품이죠.” 건물 2층은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큰딸의 작업실, 3층은 창고 개념의 자료실이라 했다.
 

2018년 5월 울산옹기연구소 전시실에서 열린 ‘김미옥 제2 옹기전’에서 선보인 쌀항아리. ‘여인’이란 이름이 붙은 옹기작품이다.
2018년 5월 울산옹기연구소 전시실에서 열린 ‘김미옥 제2 옹기전’에서 선보인 쌀항아리. ‘여인’이란 이름이 붙은 옹기작품이다.

 

‘마을 발전 디딤돌’로 마을기업 구상

김미옥 대표는 홍익대 산업대학원에서 산업공예(도자디자인)를 전공한 재원이다. 석사학위 논문은 <전통옹기 형태를 응용한 조명등 디자인 연구>. 대학원에서 도자디자인에 빠져든 것도, 졸업하고 옹기마을에 눌러앉은 것도 우리네 전통옹기에 대한 진한 애착 때문이다.

태어난 곳은 대구시 대명동. 하지만 어릴 땐 옹기친화적 시골생활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시골 살면서 장독간에서 소꿉놀이하던 기억, 지금도 생생해요.” 어쩌면 그녀에게 ‘옹기작가’는 천직인지도 모른다.

마을기업에 푹 빠지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잘 아시잖아요. 한동안 잘 나가던 옹기마을이 시대가 바뀌면서 자꾸 기울어져 가는 사실. 그래서 이 마을 발전의 디딤돌이 될 만한 뭔가가 없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거예요.” 마을기업을 ‘마을 발전의 디딤돌’로 떠올리게 된 이면에는 잘 아는 사이인 울산경제진흥원 박가령 마을기업지원단장의 조언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장하다 옹기마을’ 이름도 박 단장이 지어준 거라 했다.

“초점을 ‘옹기마을’에 맞추기로 했죠. 이 마을의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고요.” 마을 인력이라면 70평생을 옹기를 연인삼아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있고, 옹기 짓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던 ‘옹기장이’, ‘옹기장’이 있고, 그 2세들도 있지 않은가. 특히 할머니들은 장 담는 일을 두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장 담기 고수들이 아니신가.

밑그림이 그려진 뒤부터는 진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접근은 신중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떠올렸다. 준비 과정에 빈틈은 금물이었다. 드디어 지난달 12일, 사단법인 한국마을기업중앙협회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가입 확인증’을 내주었다.

◀지난해 봄 마을기업 설립 추진을 앞두고 식당에서 열린 이사진 회의 모습.
◀지난해 봄 마을기업 설립 추진을 앞두고 식당에서 열린 이사진 회의 모습.

 

평균나이 53.8세…7인이 의기투합

마을기업 구성원(이사진)은 김 대표까지 모두 7명으로 김이화(64), 박재호(53), 박진복(53), 조명철(43), 최영호(53), 허진규(55) 제씨가 그들. 평균나이는 53.8세, 거의 대부분이 옹기업과 유관하다. 특히 허진규씨는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4호 ‘옹기장’이자 문체부가 지난해 선정한 울산 제1호 ‘지역명사’이고, 김 소장의 언니 김이화씨는 울산병원 부근에서 발효식품음식점 ‘콩마을’을 운영하는 분이다. 허 장인도 그렇지만 박재호·박진복씨와 옹기마을 ‘공방카페’ 대표 조명철씨도 하나같이 옹기장을 부친으로 둔 옹기마을 2세들.

옹기마을 재생의 깃발을 높이 쳐든 ‘장하다 옹기마을’의 청사진을 엿보고 싶었다. 다음 순서는 김미옥 소장과 이사진의 속뜻이 숨어있는 사업계획서의 소개. 이론적 명분이 옹골찬 옹기 못지않게 야무졌다.

사업목적은 ‘옹기, 옹기장인, 마을주민을 활용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 그리고 ‘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의 선순환 구조 형성’. 인적·물적 마을자원으로 옹기마을 재생의 가맛불을 한번 신명나게 지펴 보겠다는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구체적 세목에선 ‘전통 식문화 전수’라는 표현도 들어있었다. 비빔밥을 옹기에 담아 시식하는 ‘옹기비빔밥 체험’도 그 중의 하나. “한식요리 자격증도 그 때문에 땄어요.” 김 대표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거든다. ‘전통 식문화’라면? 아, 그래서 마을기업 명칭에 ‘장하다’란 글귀가 들어갔군. ‘장을 한다’란 말은 ‘장을 담근다’는 말의 다른 표현 아닌가.

전통장류 보관·관리 대행에 주력

‘주요사업’에도 눈길이 갔다. △전통 된장·고추장 교육·체험(분양) △옹기체험 및 마을투어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수익 올리고, 일자리 만들고, 장류문화 발전으로 지역사회에 도움도 주겠다는 것. 그렇다면 ‘된장·고추장 분양’은 무슨 뜻?

김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당장은 (신청인들에게) 된장, 간장 담는 체험부터 선보일 참이에요. 담근 장을 항아리(독)에 담아서 우리 기업 장독간에서 보관·관리하다가 필요로 할 때 집으로 가져가게 해드리는 거죠.”

장을 담그는 건 힘이 안 들어도 보관·관리는 아무나 못한다는 게 이 마을 할머니들의 경험담이라 했다. “특히 된장은 짧아도 1년 넘게 햇볕을 쬐어가며 발효시켜야 하고 항아리는 수시로 닦아 주어야 제 맛이 난다고들 해요. 된장은 봄에 담갔다가 서너 달 지나면 ‘장 가르기’(=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는 작업)를 하는데, 간장은 6개월 후 바로 먹을 수 있지만 된장은 2~3년은 푹 묵혀야(발효시켜야) 제대로 된 장맛이 나는 법이죠.”

김 대표는 ‘첫 1년간 보관·관리’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분양’이란 아파트 베란다로 장독을 옮겨주거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게 하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이때 사용하는 장독은 옹기마을에서 만든 숨 쉬는 항아리. ‘장하다’에서 하는 일은 일종의 대행사업인 셈이다.

장독 대여사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장독대를 꾸미는 일. 옹기박물관 뒤란에 200평도 더 되는 땅을 장만해 놓았지만 협회에서 사업추진비가 내려와야 일을 시작할 참이다. 그러다 보니 ‘장하다 옹기마을’은 아직 개점휴업 상태.

심사·전시 수차례에 대학 강의까지

김미옥 대표는 지금까지 ‘작가’의 외길만을 걸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업가의 길도 동시에 걸어가야 한다. 옹기마을 안에 일찌감치 ‘울산옹기연구소’ 간판을 내건 것도 어찌 보면 운명 지어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허진규 옹기장 밑에서 5년간 사사받기도 한 김 대표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허 장인과 함께 동부산대학 생활도예과 외래교수로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홍익대 출강(2009~2011). 울주군 옹기후계자 육성과정 강사(2012~2013) 이력은 탄탄한 이론과 실기로 무장하는 데 더없이 요긴한 마중물이었다.

제6회 대한민국옹기공모전 심사위원(2019), 옹기마을 캐릭터공모 심사위원(2019)을 비롯해 ‘심사위원’을 역임한 횟수만도 11차례나 된다. 일본 다케오 한일교류전(2007), 한글문화예술제 초대전(2015, 가다갤러리) 등 개인전·단체전을 통틀어 20회를 넘기고 있다. 현재 사)한국조형디자인학회와 울주군공예가협회, 울산여성포럼 회원 및 울산옹기축제 추진위원회 위원직을 통해 살아 숨 쉬는 옹기처럼 김 대표는 쉼표도 잊은 채 물레질에 여념이 없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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