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노래 '아리랑' 진화하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 진화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2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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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내몰린 한 청년이 있었다. ‘탁경현’이라는 조선 청년도 ‘신의 바람’이라는 뜻의 ‘가미카제’ 특공대 훈련에 강제로 징집되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 중, 일본은 낡은 전투기로 미군 전함을 폭격하기로 한다. 그는 일본에서 지독한 멸시와 차별 속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했지만 천황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강요에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그는 출격 전날 밤,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을 부여잡고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지상의 마지막 노래인 <아리랑>을 불렀다. 아마도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을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은 대개 슬프고 한스럽다. 곡도 그러하지만 가사도 그런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원이나 의미가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굳이 가사에서 연관된 의미를 찾자면, 나를 버리고 가버리는 연인을 원망하면서 알 베기고(아리랑), 쓰라려서(쓰리랑) 발병이 날 것이란다. ‘고운 님 또는 그리운 님’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랑이 아리고 쓰린 한을 지녀서일 수도 있지만 하고많은 고개를 넘어야 했던 옛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서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리랑은 가사나 곡조가 슬프고 한스러운 특성과 함께 한민족의 얼이 담겼음은 분명하다.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바이칼호수 근처의 북방 소수민족인 에벤키족 언어에 ‘아리랑’과 ‘쓰리랑’이라는 말이 있는데, ‘영혼을 영접하다, 이별이나 슬픔을 참고 받아들인다.’라는 뜻이란다. 이런 의미의 말들이 우리 민족의 시원과 관련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고구려 때 한강을 ‘아리수’라 불렀는데, 이때의 ‘아리수’는 긴 강을 의미하지만 ‘아리랑’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아리랑의 ‘아리’는 ‘장(長)’의 뜻을 지녔고, ‘랑’은 ‘령(嶺)’의 변음이므로 아리랑은 곧 ‘긴 고개’를 뜻한다고도 한다.

<아리랑>은 통상 ‘정선 아리랑’을 모태로 본다. 한반도의 중심부인 태백산 둘레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은 듯하다. 아리랑은 대략 60여 종에 3천6백여 수가 존재한다. 무수히 많은 아리랑이 있지만 ‘정선 아리랑’과 더불어 ‘밀양 아리랑’과 ‘진도 아리랑’을 ‘3대 아리랑’으로 꼽는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아리랑이라고 하면 ‘신 아리랑’이라고도 하는 ‘경기도 아리랑’이다. 19세기말에 만들어진 이 아리랑은 세마치장단 곡조에 전주부와 후렴부가 되풀이되고, 가사만 사설조로 바꾸어 부르면 되니까 변용이 용이한 특징이 있다.

강제이주열차를 탔던 고려인들에게 <아리랑>은 크나큰 힘이 되었다. 아리랑을 부르며 한없이 처량한 자신을 위로했고, 두고 온 고향 땅과 연해주 땅, 부모형제를 그리며 아리랑을 불렀다. 강제이주열차를 타고 정처 없이 가면서 서로 바라보며 위로와 격려를 보낼 때도 아리랑이었고, 아득한 벼랑 끝에서 절망하면서도 입에서 저절로 나온 노래가 아리랑이었다. 강제이주 이듬해 봄부터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부른 노래가 아리랑이었고, 눈물로 일군 논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어디선가 들려오던 노래도 아리랑이었다.

<아리랑>은 이처럼 겨레의 노래였다. 슬프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어준 노래였고, 노동이 고되고 삶이 힘들 때 힘이 되어준 노래였다. 때로 슬픈 가락으로 삶의 애환을 달랬고, 어울리며 여흥을 즐길 때는 흥겨움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르던 아리랑은 한민족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다. 나라가 고난을 당했을 때에는 저항의 상징으로, 암울하던 독재시대에는 민주화를 갈망하는 노래로 아리랑을 불렀다. ‘홀로 아리랑’으로 외로운 독도에게 안부를 전했고, ‘2002 한일월드컵’ 때는 우렁찬 함성의 아리랑이었다.

<아리랑>은 이렇듯 우리 문화의 명실상부한 상징이 되었다. 때로 수많은 편곡으로, 여러 아리랑을 엮은 연곡으로, ‘플래시 몹(flash mob)’으로 등 다양한 형태로 연주되고 있다.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세계적 관현악단에서도 종종 연주되는 교향곡이 되었다. 아름다운 선율과 겨레의 한을 담은 아리랑은 이제 하나로 통일되는 그날을 염원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리랑은 2012년에는 대한민국의 신청으로, 2014년에는 북한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인류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아리랑>은 이제 희망의 노래로 진화하고 있다. 반만년 우리 역사는 갖은 고난 다 이겨내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지금도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위기감은 존재할 것이다. 당장은 ‘코로나 19’로 인해 나라의 상황이 무척 엄중하다. 이런 와중에도 ‘BTS(방탄소년단)’가 정규 4집인 ‘Map of the soul’을 발매하였다. 그들의 ‘아리랑 연곡’이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것처럼 이번 신곡들도 벌써 호응이 뜨겁다. BTS의 노래들이 아리랑과 더불어 힘들어하는 <대한민국>에게 위로와 희망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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