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생각으로 실천하는 납자(衲子)
열린 생각으로 실천하는 납자(衲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2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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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생각은 동서고금으로 긍정적 사고를 말한다. 납자(衲子)는 불교 출가수행자의 다른 이름이다. 납자가 실천을 병행하면 대도무문(大道無門)일 것이다. 불교계에는 ‘총림(叢林)’이라는 사격(寺格)이 있다. 총림은 이성(異姓)과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총림에는 반드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교육시설이 있는데 선원, 율원, 강원, 율원의 4원이 그것이다. 울산 가까이에 있는 양산 통도사를 ‘영축총림(靈鷲叢林)’이라 부른다.

어떤 조직이든 대표자가 있다. 대학교를 대표하는 소임을 총장이라 하듯 영축총림을 대표하는 소임을 ‘방장(方丈)’이라 부른다. 현재 통도사 제4대 방장 소임자는 중봉(中峰) 성파(性坡)스님이다. 중봉은 법호(法號), 성파는 법명(法名)이다. 스님은 열린 생각으로 몸소 실천하는 납자(衲子)이면서 수행자의 근본정신인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수행하는 올곧은 납자이시다. 법랍과 세수가 많은 노납자인데도 불구하고 열린 생각과 실천하는 행동은 젊은 납자도 감히 따라가지 못한다. 곧 어디에든 달려가고, 무엇이든 직접 해보는 주인공이시다. 이는 불교의 역사가 그랬듯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지향해야할 수행자의 덕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방장스님은 열린 생각과 실천으로 승속(僧俗) 모두가 존경하는 납자(衲子)로 여러 면에서 귀감이 되신다.

스님과의 일화를 나열한다. 스님은 수년전 수소문하여 필자를 찾았다. 이유는 통도사 승려로 이어지는 사찰학춤을 전승하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찾아뵈니 통도사 사회교육원에서 통도사학춤을 지도하라고 하셨다. 그 후엔 전승공간까지 지어서 마련해 주셨다. 또한 손수 <통도사학춤보존회>라고 크게 쓰신 간판도 내걸었고, 현재에도 가르침은 계속된다.

필자는 2002년부터 <전화앵예술제>를 거행하고 있다.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매년 빠뜨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올해로 19년째를 맞이한다. 한번은 큰스님을 찾아뵙고 전후 사정을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동도기전화앵(東都妓?花鶯)>을 한자로 받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렸다. “세인(世人) 가운데는 스님이 전화앵 기생 제사 지내준다고 말들을 합디다.”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과연 어떤 대답을 듣게 될지 내심 걱정을 했다. 그 순간 “스님이 기생 제사를 지내줘야지, 가정 있는 사람이 기생 제사 지내줄 까닭이 있나” 하셨다. “절에서 죽은 날 모르는 영가한테 제사를 지내주듯이…. 그게 스님이 할 일의 하나인데 뭘 신경 쓰나. 잘했다.” 하셨다. 구하 스님께서는 무풍교(舞風橋)에서 이어지는 노송길 옆 석등(石燈)의 시주자 중에 기생이 다수라고 말씀하셨다는 귀띔도 해주셨다. 덤으로 ‘가선(歌扇)’과 ‘무삼(舞衫)’의 한자 글씨까지 써주셨다.

필자가 <통도사 성보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소임자가 예술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시고는 ‘소리는 절창(絶唱)으로, 춤은 한가(閑暇)롭게 춘다.’는 의미의 〈高歌閑舞>이란 족자를 보내주셨다. 협서(夾書)에서 전문성을 당연히 인식하시고 ‘무주백성 조류학박사(舞宙白性 鳥類學博士)’라고 하는 자상함까지 보이셨다. 낙관은 ‘영축산인 방장 성파(?鷲山人 方丈 性坡)’라고 찍으셨다.

필자가 <철새홍보관> 관장으로 부임한 후 일행과 함께 큰스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가까이 다가가 앉았더니 관장 부임을 축하해주시면서, 곁에 있던 두루마리를 끄집어내 조심스레 펼쳐 보이셨다. 두루마리에는 ‘천고임조비(天高任鳥飛)’라는 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 글은 ‘천고임조비 해활빙어약(天高任鳥飛 海闊憑魚躍=하늘은 높아 새들이 날고, 바다는 광활해 고기가 뛰어논다)’는 뜻으로, ‘맑은 하늘에서 새가 되어 마음껏 날아 올라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성은 이 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제…. 멋지게 한번 훨훨 날아라.” 하셨다. 중질이나 잘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반문하실 거라 지레짐작하고 숨죽여 바라보고 있는 필자에게 철새홍보관 관장 축하휘호라 하시면서 건네주신 것이다.

‘백성(白性)’은 필자의 법명이다. 방장스님이 여러 좌중이 함께한 가운데 한 말씀을 더하셨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자리가 스님들 사이에는 가벼운 자리가 아닌데도 그 소임을 놓고 철새홍보관 관장으로 부임한 것은 대단하다.”라는…. 조금의 침묵이 흘렸다. 그때 좌중의 일행 A교수가 “스님, 이 글씨의 마음대로 한껏 나는 새 임조비(任鳥飛)가 백성 스님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다. 큰스님은 A교수를 향해 웃으시면서 “척 보면 모르겠나!” 하셨다.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크게 한바탕 웃었다.

설날에 찾아뵈었더니 <준조불서임(俊鳥不棲林)>이라는 글을 주셨다. 이 글의 의미는 좋은 새 즉 양금(良禽)이 나무를 잘 선택하듯 뛰어난 새 즉 준조(俊鳥) 역시 나무에만 깃들기를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가승이라 해도 각자 갖고 있는 능력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다. 출가한 목적이 의식주 해결이 아닐 바에는 능력과 역량을 다해 최선을 다하여 승속(僧俗)간에 두루 도움이 되는 그 수행자가 바로 수처작주 하는 주인공이다. 타고난 역량이라면 말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는 이가 주인공이다.”라고 하셨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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