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故 남소희 기자를 기억하며…
작은 아씨들-故 남소희 기자를 기억하며…
  • 이상길
  • 승인 2020.02.20 2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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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광인 탓에 난 주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하 카톡 프사)으로 영화 관련 내용을 올려왔다. 내 기분에 맞게 끌리는 영화를 찾아서 본 뒤 글을 쓰거나 방송을 할 때 미리 카톡 프사를 그 영화의 포스터와 스틸 컷으로 바꿨다. 남들처럼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릴 만한 비쥬얼은 아니라서. 아무튼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그러길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듯하다. 그리고 2020년 2월 18일, 이날 난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습관적으로 카톡 프사를 바꿀 때가 됐다는 마음이었다. 다음 영화는 바로 얼마 전에 개봉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이번 건 특히 훌륭했는데 다만 마흔을 훌쩍 넘긴 뒤 다시 본 <작은 아씨들>은 이제 ‘삶’에 대한 영화가 돼 있었다. 사실 소싯적엔 그냥 소녀들의 성장기 정도로만 생각했더랬다.

아시다시피 <작은 아씨들>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아버지를 전쟁터에 보낸 뒤 어머니(로라 던)와 함께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네 자매의 이야기다.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첫째 메그(엠마 왓슨)는 맏딸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집안일이나 동생들을 잘 돌봤고, 작가가 꿈인 둘째 조(시얼사 로넌)는 활달한 성격에 독립심이 강했다. 셋째인 베스(엘리자 스캔런)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음악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성홍열에 걸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화가가 꿈인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는 응석받이로 자라 매사가 제멋대로지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줄 아는 당돌한 소녀였다.

가난해도 꿈 많았던 네 소녀들은 시련과 상처를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 대략 감이 잡히겠지만 그렇다. 이 네 명 가운데는 바로 당신이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캐릭터는 자신과 다를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엠마 왓슨’이라는 배우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언제나 동생들을 잘 이끌면서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매그라는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들어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카톡 프사에는 매그가 단독으로 나오는 포스터를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허나 난 그러지 못했다. 영화 속 소녀들처럼 세상일은 계획대로 잘 안 된다. 거짓말처럼 2020년 2월 18일 그날, 데리고 있던 후배 하나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역시나 나처럼 영화광이어서 사무실에 들어오면 늘 나와 영화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였고 한 번은 좋은 영화 추천해달라는 내 말에 꼭 보라면서 작은 쪽지에 영화 목록을 빼곡히 적어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해서 본 영화가 바로 ‘왕가위’ 감독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였다. 보는 내내 너무 행복해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데스크회의에서 내가 깨지고 오면 늘 카톡으로 “차장님 내일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위로해줬던 친구이기도 했는데 <작은 아씨들>은 그만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영화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그 친구는 조(시얼사 로넌)를 좋아했었다. 허나 정작 그 친구의 삶은 일찍 세상을 뜬 베스(엘리자 스캔런)가 되어버렸고, 내 카톡 프사도 결국 베스가 올라가게 됐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가 가기 전날 밤, 난 자기 전에 유튜브로 고 신해철이 남겼던 명연설을 보게 됐는데 거기서 신해철은 이런 말을 하더라. “우린 모두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소명(목적)을 다했고, 태어난 이후의 삶은 그냥 보너스 인생”이라고. 그리고 이 글은 그 보너스 인생 동안 영화를 좋아하면서 참으로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멋진 남소희 기자에게 바친다. 2020년 2월 12일 개봉. 러닝타임 135분. 이상길 취재 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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