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준의 신변잡기] 나무지팡이 수집 천 개를 넘기면서
[박재준의 신변잡기] 나무지팡이 수집 천 개를 넘기면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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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보름이 넘었지만 1월 9일은 필자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첫째는 1967년 한국전력(주)에 입사한 날이고, 둘째는 학수고대하던 나무지팡이[柱杖子] 수집 1천 개 고지를 가까스로 넘긴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입상의 영예를 차지한 지팡이는 명품 ‘진(眞)’의 왕관까지 쓰고 1천 고지 기념 테이프를 끊었다.

지팡이에 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 마가복음 6장 8절로 거슬러 오른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더러 전도여행을 내보내시면서 당부하시기를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감히 성인의 말씀에 사족(蛇足)을 붙이다니 불경스러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필자가 지팡이를 수집하려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데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사연 때문이기도 했다. 마을 뒷산(일명, 솔마루) 산책길 섶에 명품(名品) 지팡이 소재가 자라고 있었다. 누구든지 쉽게 볼 수 있는 곳인지라 못 봤다면 당달봉사 소리라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발견 당시 유일한 흠이 굵기가 함량미달 수준이란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2~3년은 더 자라야 튼실한 지팡이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무지렁이도 군침을 흘릴 정도였으니 다른 수많은 이들도 필시 눈독을 들였던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잡아놓은 토끼나 다름없으니 거침없이 다 공개해도 손해 볼 것이 없지 싶다. 시쳇말로 “먼저 본 놈이 임자”라는 불문율이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으니, 그야말로 ‘운칠기삼(運七氣三, 運七技三)’이 아니었나 싶다.

근자에 와서 부쩍 눈에 삼삼하고 뇌리에서 영 떠나지 않던 것이 이날따라 꿈속에도 나타나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그날(1월 9일)을 거사의 디데이(D-day)로 잡았다. 지팡이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밑둥치를 조심스럽게 자르고, 곁가지를 치고, 껍데기를 벗겼다. 그러고 나서 요모조모 뜯어보니 명품 반열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겠다 싶어 흐뭇한 웃음이 진종일 떠나지 않았다.

나무지팡이 작품(?)을 보는 이마다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떤 나무 재료를, 어디서 구해서, 얼마나 걸려 만드느냐?이다. 그러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장소는 전국구이고, 30년 정도는 되었으며, 옻나무 외에는 소재 불문이라고 말이다. 사실 명품 지팡이 감은 인적 드문 낭떠러지나 계곡 등 난코스에 숨어 지내는 것이고, 이 녀석을 끄집어 올려야 비로소 감개무량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취향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제 눈에 안경”이라 하지 않던가. 필자가 보는 품격 있는 지팡이가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는 일반인과는 조금 다르다.

첫째. 강직성이다. 부러질망정 휘어져선 안 된다. 따라서 환자의 몸무게와 지팡이 크기(사이즈)는 매우 중요하다. 손으로 집었을 때 손잡이가 갈빗대 부근에 머무르는 것이 제일 좋다.

둘째. 친밀감이다. 보고 또 보고, 침상머리에까지 두고 싶고, 아름답고 정겨움이 느껴질 정도로 매력 덩어리로 생겨야 한다. 특히 손잡이 부분은 무료할 때 노닥거릴 장난감 구실을 할 정도로 정감이 있어야 한다.

셋째. 눈요깃감이다. 지팡이는 부정적이고 동정어린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물건이므로 타인에게도 호기심이나 감탄사를 유발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라도 갖추면 금상첨화이다.

한때는 지팡이와 중절모(일명 ‘나까오리’)가 지성인의 상징인양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시대 변화로 이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옛날로 회귀(回歸)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각박한 세태에 늙은이의 품격 유지와 호신용으로도 유용하리라 생각되어 굳이 애용(愛用)하려는 것이다. 앞으로는 1~2년 동안 하나하나를 정성껏 갈고, 다듬고, 코팅 처리로 영구화 조치까지 마치고 나면 비로소 바깥세상에다 선보일 작정이다.

이십여 년 전 우리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환자들에게 도움이라도 줄 방법을 모색하던 중 문득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 하나가 있었다. 내 손으로 수집하고 정성스럽게 다듬은 나무지팡이를 이분들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팡이 모으기였다.

필요하신 분은 몸무게와 키를 알려주신다면 체격에 꼭 맞는 작품을 무상으로 대여해드릴 생각이다. 다만, 사용이 끝나는 대로 되돌려주셔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셨으면 한다. 그래야만 선순환(善循環)의 고리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재준 에이원공업사 사장·NCN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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