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불편한 진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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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려면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빈부격차, 계급투쟁, 삶의 가치 등등 머리로 알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가슴으로 느낄 때의 불편함이다. 영화는 과장된 이야기를 해학으로 혹은 패러독스(역설)로 풀어낸다. 과장된 이야기라 했지만 예전에 혹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만큼은 충분하다.

며칠 전 사건이었다. 자동차세를 못내 번호판이 영치되자 종이에 번호판를 인쇄해 딱풀로 붙이고 울산~창녕을 왕복한 이가 실형을 받았다. 그 황당함에 웃지만 속사정을 알면 짠하다. ‘기생충’의 한 에피소드로 장식될 만하지 않은가.

불편한 진실은 사회에 만연해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노린 ‘부모찬스’, 계급과 자본에 의한 ‘갑(甲)질’ 따위는 이미 사회문제로 굳어졌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 속에서 ‘공평,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자본독식의 사회고,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사회다. 자본독식과 다양성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양극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를 ‘불편한 진실’로 여긴다. ‘불편한 진실’은 법률이나 사회적 규범 또는 국가가 조정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개개인이 ‘불편한 진실’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면 ‘공평과 정의’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것이다.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 박주영 부장판사가 최근 ‘부모찬스’를 이용한 취업비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렸다. 인사권의 정점에 있는 자가 “누구를 챙겨보라”고 하자 아랫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부정채용을 성사시켰다. 인맥을 연결고리삼아 저질러진 이 취업비리는 동일선상에 놓인 선량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심각한 범죄로 정의됐다.

박 판사는 자식의 취업을 청탁한 ‘부모찬스’에 대해, 또 이를 실행한 범죄행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채용비리 범행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수많은 지원자들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박탈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 일반에 만연한 연고주의 즉, 속칭 연줄로 취업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과 관행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고, 자신이 왜 낙방한지도 모른 채 실력에 따른 공정한 채용절차가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꿈과 노력을 짓밟으며, 그들에게 막심한 허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기회균등과 공정성이라는 보편적 정의를 훼손시킨 점에서 심각한 범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과 같은 범행을 앞에 두고, 노량진에서 컵밥과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때우며 주야로 공부하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남들보다 앞선 출발점은 고사하고 동등한 출발선에도 서게 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단지 그들의 등 뒤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 전부인 가난한 부모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대해 기회가 균등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의로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책무를 누리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어떻게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신뢰와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그들의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들이 그러했듯, 가난하고 배경 없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아이를 낳아 기르며 정의로운 삶을 가르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고함이었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공평하고 정의롭기’를 바란다.

정인준 취재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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