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에 생각한다
이 겨울에 생각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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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이 지나간 것이 벌써 까마득하다. 그리고 몇 주 후 음력설을 맞이하고 나흘간의 쉼도 가졌다. 그것이 지난 지 달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마냥 저 멀리 가 있는 듯하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걸까. 삶에 활력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어디 핫한 일이 생겨서일까.

지나간 세월은 모두 과거의 일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하등의 쓸모가 없는 것인가. 그러면 늘 구가하던 추억들은 모두 과거의 일인데 어떻게 하나. 그것도 좋은 일만 뇌리에 새겨져 있고 좋지 않은 일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황금 같은 실타래들을 무궁하게 풀어 감성 모드로 남겼고 앞으로도 계속 남기려 한다. 신종 바이러스가 난무하는 요즘 잠시 쉼이 필요할 것 같아 머릿속 상상으로 남겨두려 한다.

과거가 산더미같이 쌓여 나이로 축적되는 사실을 순간 알아차리자 기운이 빠지고 정신도 멍해진다. 혹여나 젊은이들에게 추한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당당하게 살아가면 될 텐도 말이다.

지나간 과거의 세월은 소중하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어떤가. 지금 이 시간 ‘현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싶다.

내일이라는 미래는 차선으로 두고 지금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과연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진정 건강하게 사는 것인지. 좋은 감정이 풍부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건지…. 차라리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대로의 모습으로 쭉 살아갔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이 지나치게 디지털되어 있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신문에 연재해 온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 빌 킨(B. Keane)은 힘주어 말한다. ‘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이고, 미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그러나 오늘은 선물이다.’ 라고….

영어로 ‘현재’를 ‘프레전트’(present)라 한다. ‘선물’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오늘이라는 현재는 신이 인간에게 준 훌륭한 선물로 인정하니 잘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그만큼 오늘 이 순간이 소중하고 보배롭다는 고매한 충언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오늘’이란, 후회가 아니라 만족스러운 삶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전체를 기준으로 보지 않고 365일 중 하루인 ‘오늘’이다. 지금 하지 못하는 일은 과거에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또한 미래에도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지금 이 순간 값진 일을 할 수 있다는 소소한 삶에 감사하며 살자.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 Faulkner)는 말한다.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라고. 오늘을 바꾸어야 내일이 바뀐다는 뜻이다. 내일에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자화상 같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면 희망이 있다기에 학수고대했지만 하루가 지나도 따분한 오늘만 계속된다면, 우리는 무기력해졌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유는 지쳤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일 것이다.

삶의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내 마음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멀리서 찾으려고만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렇듯 만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다섯 글자의 뜻은 사바세계의 갈팡질팡 헤매는 중생들의 가슴속에 늘 살아있는 것이다. 삶이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그것이 답이고 마음‘심(心)’의 참뜻이다.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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