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에 절하기’
‘말뚝에 절하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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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처갓집 말뚝에 절하기’가 있다. 여기서 ‘말뚝’이란 처갓집에서 소를 야외에 묶어두는 말뚝을 뜻할 것이다. 왜 그곳을 향해 지극정성으로 절을 할까? 이유는 있기 마련이다. 자기한테 시집와준 아내가 마냥 고맙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고마움 속에는 시부모 잘 모시고, 동기간에 우애 있고, 자식 낳아 가문 이어주고, 내조(內助) 잘하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역할도 섞여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필자는 교통신호등을 보거나 신호에 걸렸을 때 말뚝에 절하듯 하는 고마움을 느낀다. 조류를 좋아하는 성품에서 배태된 발상의 전환이라 할까.

먼저 도로다. 아스팔트는 당연히 검은색 떼까마귀를, 흰색 선은 하얀 깃 백로를, 노란색 선은 쇠백로의 발가락과 중대백로의 부리, 그리고 논병아리의 눈동자를 연상시킨다. 신호등은 정지신호인 빨간색, 경고신호인 주황색, 이동신호인 초록색(‘파란불’) 등 3색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정지신호 때 옆으로 가라는 화살표 모양의 초록신호도 있다. 신호등의 색깔을 울산의 자연생태환경과 연결시켜 봤다.

먼저 정지신호인 빨간색에서 학(鶴)을 떠올렸다. 학은 과거의 울산과 뗄 수 없는 새다. 학성(鶴城)이라는 별호(別號)를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학이었다. 울산의 습지터전을 지키다가 어쩔 수 없이 삼학촌(三鶴村=신복·삼호·무거의 통칭)을 뒤돌아보며 학려(鶴?)로 떠난 울산시민의 가슴속 새다. 정지신호인 빨간색과 학 머리의 붉은색 단정(丹頂)이 서로 겹쳐지는 가운데 울산 자연환경의 가치성과 중요성을 떠올렸다. 울산에서 바위에 새겨진 학 그림은 반구대, 오산 등 두 곳에서 세 마리가 확인된다.

사족(蛇足)삼아 ‘나의 스승은 자연이다. 자연은 자연스럽게(吾師自然 自然而然)’를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경고신호인 주황색에서 쇠백로와 중대백로를 떠올렸다. 쇠백로와 중대백로는 황색을 지니고 있다. 쇠백로는 발가락에, 중대백로는 부리에 황색 물을 들였다. 쇠백로는 노란 발가락으로 ‘족대로 붕어 잡듯’ 하는 행동이 앙증스럽다. 중대백로가 머리를 쳐들면 황색부리가 깃발 같은 경고신호로 보인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과 절대주차금지지역의 황색 이중실선에서 보이는 쇠백로의 발가락과 중대백로의 부리는 조심성을 더하게 만든다.

이동하라는 신호인 초록색에서는 울산의 백리대숲을 떠올리게 된다. 사계절 푸른 백리대숲은 언제가 이동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초록의 백리대숲은 ‘누워있으면 죽고, 이동하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울산의 정주환경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특히 정지신호에 옆으로 가라는 신호인 화살표 모양의 초록신호등은 “찾으세요 태화강국가정원, 걸으세요 태화강백리대숲, 쳐다봐요 태화강 떼까마귀 군무”라고 백리대숲이 삼호(三呼)로 부르며, ‘와와’로 손짓하는 것으로 연상했다.

물론 앞에서 나열한 비유들은 ‘제논에 물대기’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라, 그곳이 모두 의미 있는 곳이 된다’는 의미의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이라는 말을 되새겨보면, 신호등의 색깔을 울산의 생태자연과 짝 맞추어도 그다지 생뚱맞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철새 홍보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이다. 지난 6일(목) 오후 5시경, 시장이 사전연락도 없이 철새홍보관을 찾았다. 반갑게 맞이하고는 철새홍보관 옥상 철새전망대까지 여기저기를 자세히 안내하고 설명해드렸다. 시장은 떼까마귀의 군무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서산의 해가 저녁놀을 뒤로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각, 사방 멀리 먹이터에서 일과를 끝내고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떼까마귀 무리를 기다렸다. 어둠이 가로등 불빛을 서서히 부각시킬 즈음, 약 13만 마리의 떼까마귀 무리가 삼호대숲 상공을 물레방아 돌듯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공존의 법칙을 알고 있었기에 날개를 반쯤 당겨 배려의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시장은 경이로운 마음으로 이 광경을 한 시간 넘게 지켜봤다. “시장님, 저녁 군무는 선회비행이 반복되고, 새벽 군무는 짧은 시간에 날아 나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한번 경험해보시죠.”

다음날인 14일(금) 새벽 여섯시쯤, 여명의 시각에 울산시 산하 기관장 대부분이 모여들었다. 시장의 아이디어가 적중했다. 울산 철새 홍보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새벽이었다. 동참한 모두는 하나같이 떼까마귀의 군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어떤 홍보 행사가 이보다 더 효과적일까? 그것은 시장 자신이 먼저 경험한 팩트를 지역 기관장들에게 알려주며 철새 홍보에 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태화강국가정원에서는 조류생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아산 정주영 회장이 자주 사용했다는 ‘이봐 해봤어?’, 롯데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자주 썼다는 ‘가 봤어? 몇 번 가봤어?’란 말이 뇌리를 스쳤다. 시장이 솔선수범으로 경험하고 나서 느낀 바를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다. 공무원이 그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여명 속의 멋진 그리고 힘찬 전진의 이벤트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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