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미터’
‘길거리미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6 1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울산이 고향이면서 서울 산 지 50년쯤 된다는 지인 한 분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울산지역 민심을 물어오던 이 지인이 이날 대뜸 꺼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길거리미터’란 말을 아느냐는 것. 처음 듣는 말이라 했더니 그는 친절하게 설명을 풀어나갔다.

“왜 △△미터라는 여론조사기관 잘 아시지요? 그 엉터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도저히 못 믿겠다 해서 생겨난 게 바로 ‘길거리미터’라는 여론조사 방법입니다.” 그분의 설명인즉, 현황판 같은 여론조사 판을 길거리에 세워놓고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호감·비호감 여부를 묻는 노천여론조사라 했다.

이때 쓰이는 소도구는 둥글고 손톱만한 스티커. 파란색은 남자용, 빨간색은 여자용으로, 조사에 응할 생각이 있으면 조사판에다 붙이기만 하면 된다. ‘문재인 지지율 길거리 조사’의 문항은 단 세 가지. “잘한다”, “못한다”, “모르겠다” 이 셋 가운데 하나만 골라 스티커를 바로 그 밑에 붙이기만 하면 끝이다.

여론조사기관이면 의무적으로 표시하는 ‘신뢰도’가 궁금해서 지인한테 되물었다. 안티(대통령 비판) 그룹을 미리 풀어놓았다가 야바위놀음 하듯 바람도 잡고 ‘못한다’ 쪽에 스티커를 다량 붙이게 만들면 그걸로 소기의 성과는 손쉽게 거둘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이 대목에서 그는 말없음표(…)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형편없는 바닥 수준이며 이는 전국적 현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거리미터’라!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으며, 울산에서는 지난해 10월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실시한 적이 있다는 지인의 말도 확인할 겸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자유의 창’, ‘자유로운 도시’처럼 ‘자유’란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걸로 보아 이내 감이 잡혔다. ‘자유로운 도시’가 눈에 띄어 먼저 뒤져보았다. 작성일자는 2019.12.31.

“길거리미터, 문재인 지지율 조사- 2019년도 서울, 경기도, 인천 종합결산. 6.27~12.23일 서울, 경기, 인천 시·군·구 길거리에서 2시간 동안, 보드 판에 잘한다. 못한다. 모른다에 본인들이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각 시·군·구 조사장소에서 1회 이상 조사… 총 69회. 참여인원 7천150명. 남자는 49% 참여에 20% 지지. 여자는 51% 참여에 29% 지지. 모른다는 극소수. 길거리 여론조사 결과는, 서울·경기·인천 문가 지지율 평균 25%….”

그 다음 표현은 흥미를 더 자극했다. “지방을 따져보면 전라도는 60%라고 보고, 부산·경남은 30%라고 짐작하고, 대구·경북은 25% 정도, 충청·강원·제주는 30% 남짓이라고 보면 전국평균 문가 지지율은 30% 이하라고 봄.” 그러면서 이런 토도 달았다. “이런데도 언론보도는 문가 지지율이 늘 40% 이상, 50% 초반이라고 보도.”

내친김에 한 술만 더 뜨기로 하자. “여론조사 언론보도의 실체를 보면 1천 명한테 전화하면 50명 정도 응답. 여기서 25명이 지지하거나 찬성하면 지지율 50%, 반대가 15명이면 30%, 나머지는 모름이나 무응답. 결론은 1천 명한테 전화해서 25명이 지지하거나 찬성했는데 지지율 50%라고 발표.”

무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거나 악감정에 받쳐서 뱉어낸 말 같다고 굳이 사족까진 달고 싶지가 않다. 다만 이런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보인다는 사실만큼은 감추고 싶지 않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지도자가 아직은 시야에 안 잡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말, 한마디쯤 덧붙이고 싶다.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 언로가 이만큼 트인 나라가 이 지구촌에 어디 또 있겠나?”

김정주 논설실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