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사랑의 영수증’
[학부모 칼럼]‘사랑의 영수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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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가 완료되면 당사자들은 영수증을 주고받는다. 영수증은 잘 보관해야 한다.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래관계는 명확히 해두는 것이 좋고, 대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도장 찍힌 영수증 못지않게 도장 없는 영수증도 중요하다.

상부상조의 전통을 미풍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영수증을 더 중히 여기기도 한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고, 베푼 만큼 받고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이 세상 이치다. 편지의 회신은 곧 영수증이요 고마운 마음의 확인이다. 우리는 이웃의 길·흉사는 잊는 법이 없다. 축의든 부의든 전하면 되돌아오는 봉투 또한 영수증이다. 요컨대 영수증은 세상에서의 나의 몫이요 책임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요 도리이다.

근래에 먹고도 안 먹었다 하고 받고도 안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세상이 어지럽다. 영수증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특권의식, 정치한다는 핑계와 위협으로 남의 돈을 빼앗고 패거리를 만들어 정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몰고 가는 그들의 심보는 어떤 모습일까. 재화의 거래는 영수증을 통하여 확인되지만 마음의 교류는 무엇을 통하여 알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그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쉽기도 하다. 마음은 말과 표정으로 나타난다. 따뜻한 말, 정감 가는 표정이 사랑의 영수증이다. 그러나 때론 말도 필요치 않다. 눈빛과 몸짓으로도 마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눈빛과 몸짓에는 드러내려는 마음뿐만 아니라 감추려는 마음도 들어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의 모습만으로도 사랑은 확인된다.

세상에는 영수증 따위가 필요 없는 사이도 있다. 혈육이라도 좋고, 친구라도 좋고, 연인이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다. 주기만 해도 만족하고 받지 않아도 좋은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다. 이들의 주고받음은 사랑이다. 사랑은 무조건 주기도 하고 무한정 받기도 한다.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는 계산이 필요한 사이라면 그것은 이미 진실을 벗어난 사랑이다.

부부간의 사랑에도 영수증이 필요할까. 필요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영수증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자녀이다. 자녀는 부부간 사랑행위의 확실한 증거요 숨길 수 없는 영수증이다. 그러기에 이를 고이 지니고 귀하게 여김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경제가 얼어붙고 마음이 메마른 세상이다. 어렵고 힘이 들수록 사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정, 직장, 이웃, 연인, 친지 사이에 사랑의 불꽃을 확인해 보자. 어려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등불을 밝혀 서로 보듬고 어둠을 헤쳐 나갈 때 밝은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영철 울산시교육청 학부모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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