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질병들이 무시로 출몰하는 세상
신종 질병들이 무시로 출몰하는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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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nCoV2019)’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은 도시 기능이 거의 마비 상태고, 같은 성 내 황강도 초비상 사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인류애를 강조하지만 중국인들은 거의 왕따가 되고 있다. 한국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와 예방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염성이 매우 높고 빨라서 이 소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 여간 걱정이 아니다. 이는 질병관리나 방역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신종 질병들이 무시로 출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2015년 5월에 발발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도 ‘코로나 바이러스(MERS-CoV)’에 의해서 번졌다. 다행히 7월말에 종료되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염자의 43%인 402명이 사망했고, 한국은 감염자 186명의 17%인 38명이 사망했다.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범세계적으로 유행하였다. 한국에서는 2009년 10월부터 2010년 8월말까지 76여만 명이 감염되어 270명이 사망하였다. 그 무렵에 필자는 교장으로 근무했는데, 아이들은 물론 교원들까지 감염되곤 했었다.

2002년 11월에 중국 광동성에서 시작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에 의해 전염되었다. 2003년 7월말까지 9개월 동안 중국 349명, 홍콩 299명 등 750여 명이 사망했으나 한국은 무사히 지나갔다. 앞으로 또 어떤 병원체들이 출몰할지는 짐작하기 어려우나 어떤 형태로든 전파력이 뛰어난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신종 바이러스가 연이어 나타날 개연성은 무척 높다. 이런 바이러스 말고도 우리는 황사나 오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등으로부터 호흡기를 위협받고 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신종 전염병들은 거의 호흡기 질환이다. 과거 인류사에서 겪어왔던 질병들이 위생이나 영양, 환경 등에 의한 세균 문제가 주류였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인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또 다른 형태의 신종 호흡기 질병을 인플루엔자 독감처럼 앓아야 할지도 모른다. 기후온난화나 대기오염, 생태계의 변화 등이 새로운 전염병을 유발시키지 않나 싶다. 여기에다가 교통의 발달로 좁아진 지구에서 낯선 질병들이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까지 전파되고 있으니 국가는 이제 상시 방역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신종 전염병은 사람들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종 가축들은 사람보다 더 잔혹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에 휴전선 인근에서 발병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은 다행히 전국적 확산을 막을 수 있었지만 15만여 두수가 매몰처분 되었다. 중국은 전체 돼지 4억3천만 사육두수 중 1억3천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다. 구제역이 창궐하던 2010년 겨울부터 2011년 초봄까지 347만 마리가 죽어 나갔다. 한 해 걸러 도래하는 조류독감 AI로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약 7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들이 매몰처분 되었다.

인류사는 전염병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면 최악의 범유행 사건이 있었다. 1346년부터 1353년 사이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흑사병이 창궐하여 1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흑사병 병원균에 관한 많은 이설이 있었으나 페스트균으로 밝혀졌다. 화물선에 들끓던 검은 쥐들에 기생하는 동양쥐벼룩을 숙주로 하여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 총인구의 30% 내외가 죽었다. 흑사병 이전의 유럽 인구가 4억5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1억 명 이상이 죽었던 것이다.

한국을 뒤흔들었던 전염병도 부지기수였다. 파급력이 엄청난 콜레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괴질’ 또는 ‘호열자’라고 불렀는데, 1946년에 전국으로 퍼졌을 때의 공포는 선친께 들은 바 있다. 조선조 5백년간 한양에서만 천연두가 50여 차례 창궐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릴 적 천연두 항체를 만들었던 우두 흔적, 초등학교 때 결핵 예방을 위해 맞았던 불 주사는 전후 세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홍역도 콜레라, 천연두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전염병 중 하나로 꼽혔다. 팔도에 홍역이 대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1668년 기록이 전한다.

이렇듯 백신과 공중보건이 발달하기 전에는 전염병에 걸려 속절없이 죽었다. 염병이라 불렸던 장티푸스, 후진국 전염병의 대표 격인 결핵도 성행하던 때가 있었다. 감염자 4만5천 명과 사망자 1천 명으로 향해 치닫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히 공포 그 자체이다. 중국 발 경제 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도 예의주시할 일이다. 다행히 한국은 초기 방역에 성공하여 감염자 수도 그리 많지 않고, 치사율도 아직은 제로다. 국가는 이제 상시 발동이 가능한 방역체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현대 문명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짚어볼 때이다.

이정호 칼럼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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