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Letter]‘의식화교육’에 강요된 교육은 없다
[평생교육 Letter]‘의식화교육’에 강요된 교육은 없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0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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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인헌고 학생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교내 마라톤대회에서 교사가 ‘반일 문구’가 담긴 선언문을 적어 몸에 붙이고 달리라고 그에게 강요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가장 청정해야 할 학교 공간에서 뿌리 깊은 정치사상 교육을 강요한 교사와 교육감의 사죄 및 사퇴를 요구했다. 그 학생의 말처럼 학교 현장에서 그런 강요가 있었다면 일본의 과거사 만행에 대해 학교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주장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의 대응은 그렇지 않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헌고 정문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과 시민 100여 명이 모여들어 ‘반일파시즘교육 반대’, ‘전교조 해체’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교조가 학생들에게 ‘의식화교육’을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전교조가 사고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의식화교육’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의식화교육’이란 학생들에게 반미, 친북, 좌경의식을 주입시키는 교육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들은 전교조의 ‘의식화교육’을 받아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풍경에서도 전교조의 불온한 사상 주입의 결과라는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다.

전교조 교사들이 실제로 학생들에게 그러한 사상을 강요했는지를 떠나 ‘의식화교육’은 학생들에게 사상을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다. ‘의식화교육’이란 말은 파올로 프레이리의 ‘피억압자의 교육(Pedagogy of the oppressed)’에서 시작되었다. ‘민중교육론’으로도 소개된 이 저서에서 프레이리는 교육의 목적은 기득권에 의해 강요된 세계관을 극복하고 자신이 처한 세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970년 미국에서 초판 된 이 책은 학술서로는 드물게 75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1980년대 한국에 이 책이 소개된 이후 교육민주화 운동의 철학적 바탕이 되었고 이후 전교조가 탄생했다. 당시 정권은 ‘의식화교육’을 전교조가 학생들에게 불순한 좌경이념을 주입하여 그 이념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으로 규정했고 지금도 같은 맥락으로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육(Pedagogy)이란 누군가에 의해 의도되고 계획된 것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을 사고능력을 갖추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로 전제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반복하고 주입하는 것을 교육으로 인식한다. 프레이리의 ‘의식화교육’은 이러한 전통적 교육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의식화교육’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학생들을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Students think for themselves) 교육이다. ‘의식화교육’에서 학생은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학습자라는 기본인식에 기초한다. 프레이리의 교육관은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다. 프레이리의 이러한 ‘의식화교육’은 이후 평생교육의 철학적,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어떤 정치집단에 속하던 학생을 특정 이념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은 ‘의식화교육’이 아니다. 학생에게 모든 국제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론의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이 ‘의식화교육’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학생 스스로 인간의 존엄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학생은 선하며, 자율적이며, 성장을 위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교육의 출발이다.

올해 선거에 고3학생들이 유권자가 되었다.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써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학생은 미성숙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학생보다 미성숙한 어른이 적지 않은 현실을 볼 때 그것은 어른들 스스로의 잘못을 덮으려는 방어논리에 불과하다.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것도, 보호를 명분으로 강요되는 교육도, 불순하게 의도된 교육을 하는 것도 ‘의식화교육’이 아니다. ‘의식화교육’에 강요된 교육은 없다.

신기왕 교육학박사,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 평생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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