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 사랑(연애)에 대한 조금 잔인한 해부
미드소마 - 사랑(연애)에 대한 조금 잔인한 해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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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영화 '미드소마' 한 장면.
영화 '미드소마' 한 장면.

 

<미드 소마>에서 대니(플로렌스 퓨)는 소심한 성격의 여대생이다. 너무 소심해서 지금 신경 안정제까지 먹고 있다. 그녀에겐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잭 레이너)이 있었는데 둘은 크리스티안의 친구인 펠레(빌헬름 보름그렌)를 따라 스웨덴의 호르가라는 마을에서 열리는 미드소마(하지) 축제에 오게 됐다. 펠레는 같이 인류학을 전공 중인 스웨덴 친구였고, 대니와 크리스티안 외에도 몇몇의 친구들이 함께 펠레를 따라 하지 축제에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니와 단 둘이 있게 된 펠레가 갑자기 대니의 손을 잡았다.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이 올지 모른다고 하자 대니는 이렇게 말한다. “내 소중한 친구고 나도 좋아하지만 널 붙들어 준다는 느낌이 들어? 안식처 같은 기분이 드냐고?”

이 무슨 청춘 막장 로맨스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펠레가 그렇게 말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사실 대니는 얼마 전에 가족을 모두 잃었다. 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던 동생이 아빠엄마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해버린 것. 하지만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은 그녀의 슬픔에 대해 겉으로만 함께 슬퍼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작은 일에도 전화를 걸어 걱정을 털어 놓으며 귀찮게 해댔던 대니에 대해 그는 이미 친구들과 헤어질 궁리를 하고 있었고, 친구들과 몰래 스웨덴 여행까지 추진 중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그게 들통이 나면서 대니까지 따라오게 된 것. 그리고 펠레는 친구인 크리스티안의 그런 속마음을 다 알고 있었기에 대니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다고 펠레가 지금 대니에게 고백하는 거라고는 착각하지 마시길. 그러니까 펠레가 그러는 건 대니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사실은 펠레도 어릴 적에 화재로 부모를 모두 잃었었다. 고아가 됐지만 그는 이곳 호르가에서 자라면서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호르가는 독특한 전통을 지닌 씨족공동체 같은 부락이었다. 모든 구성원이 다 가족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공동생산에 공동분배가 이뤄지는 곳이었다. 식사도 모두 모여서 같이 했다. 남녀 간의 교제도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는데 우선권은 여자에게 있었다. 개체수 유지를 위해 외부 방문객이 생길 경우 마을 여자가 한 남자를 찜하고 그 역시 그녀가 마음에 들면 마을 어르신 입회 하에 심사에 들어가게 된다. ‘OK’ 사인이 떨어지면 둘은 마을 여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합궁을 해 아이를 잉태하게 된다. 외부인의 발길이 뜸할 땐 가끔 근친을 통해 잉태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선 90년마다 9일 동안 미드소마 축제가 열리는데 이 시기에 대니 일행이 마을을 찾게 된 것이다. 축제 때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남녀 어르신 한 쌍이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신을 재물로 갖다 바치는 의식인 셈이다. 더 골 때리는 건 마을 사람들은 철퍼덕하며 골이 깨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 이 글도 점점 골때리고 있다는 거 잘 안다. 그렇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최고의 공포영화로 뽑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사랑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니, 사랑보다는 연애에 더 가깝겠다. 구름 위를 떠다니며 온도만 높은 연애란 게 그렇다. 펠레가 대니에게 했던 말처럼 어차피 자기 좋으라고 하는 연애, 가족처럼 붙잡아 준다거나 안식처 같은 느낌은 잘 없다. 늘 상대방을 가지려다 보니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거나 힘들게 하면 쉽게 신경질을 부리며 막말을 내뱉는다. 또 무엇보다 자신이 행복하고 즐거운 게 더 중요하다 보니 상대방의 눈을 피해 가끔 한눈을 팔며 딴짓도 한다. 크리스티안의 그런 모습은 호르가 마을로 오기 전에 이미 있었고, 와서는 아예 대니의 눈을 피해 눈이 맞은 마을 여자와 합궁까지 하게 된다. 그걸 목격한 대니는 엉엉 울게 되고, 마을 여자들도 같은 여자로서 대니와 함께 통곡을 한다. 그건 대니가 부모와 동생을 모두 잃었을 때 크리스티안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 이 영화, 페미니즘 영화다. 남녀가 합궁을 할 때 반드시 상호 동의는 물론 어르신들의 심사까지 거쳐야 한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또 공포영화답게 시체를 해부한 뒤 예술 작품처럼 걸어놓은 장면이 가끔 등장하는데 그건 마치 세상의 흔한 연애를 해부해 놓은 듯하다. 아무튼 다른 여자와의 합궁 이후 크리스티안은 아이를 잉태시킨 뒤 마을 사람들에 의해 불에 타 죽는다. 그걸 지켜보는 대니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녀는 비로소 환하게 웃는다.

영화 초반에 나오지만 소심한 대니는 자꾸 기대려는 자신에게 질려 크리스티안이 떠날까봐 늘 조마조마해했다. 하지만 호르가 마을의 가족이 된 그녀는 이제 신경안정제를 끊을 듯하다.

2019년 7월11일 개봉. 러닝타임 170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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