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책과 사람들과의 인연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책과 사람들과의 인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0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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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커스 주삭-책도둑

기다리던 봄이 도착했다. 입춘을 며칠 앞둔 주말, 반가운 얼굴 몇, 누추한 거처를 방문했다.

유일하게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가끔 만나 밥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편한 만남이다. 모두 5명인데 ‘독수리 5형제’라 부른다. 의미는 없다. 그러고 싶었을 뿐.

일행은 자기가 아끼고 보았던 책을 몇 권 주고 갔다. 책만 한 위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고마움은 더욱 컸다. 책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들이 각 과정을 졸업할 때마다 담임선생님에게 꼭 시집을 선물했다. 촌지(寸地)를 찔러 주거나 밥 한 끼 한 적 없다. 먹어 없어지는 음식보다 마음에 두고두고 남는 책 한 권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책 읽기에 마음이 가 있던 중학교 시절, 집 근처 ’구덕서림‘이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둘째 형과 서울에 거주하시는 넷째 형이 자주 데려가 책을 사주곤 했다.

주인도 동네 아이고 귀한 손님이니 무시하지 못해 나는 하교(下校) 시간이면 이 서점에 꼭 들러 책 읽기 놀이를 한 두어 시간 하다가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당장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면 가지고 싶어 어느 날부터 주인 몰래 한 권씩 훔치기 시작했다. 주로 당시 인기가 높았고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삼중당‘ 문고판이었다. 잦은 책 도둑질을 주인이 몰랐을 리 없었겠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 그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이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적도 없었다만 그때의 두근거림, 불안감은 책 도둑이 오늘의 모습을 유지하게 하는 데 큰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생각하면 지금도 낯 뜨겁다. 어느 하늘 아래 살아는 계신 건지?

나는 지인들에게 책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역시 남의 책을 탐내지도 않는다. 꼭 읽고 싶으면 그의 서가에서 책 제목을 적어 오거나 스마트 폰으로 표지를 찍어온다. 특별한 경우엔, ‘영구 임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2014년 나는 잊지 못할 한 편의 영화를 만난다.

‘책 도둑(The book thief).

영화는 2013년 개봉되었다. 브라이스 퍼스 빌 감독의 작품인데 우리가 잘 아는 ’제프리 러쉬‘라는 남자 배우가 나오고 어린 여자 주인공 리젤역으로는 ’소피 넬라스‘가 열연.

내용은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의 비극과 공포 속에서도 말(言)과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버텨 나갈 수 있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다.

책을 통해 ‘말’이 때로는 사람을 이끌고,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할퀴며, 때로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주인공 리젤의 경험이다.

국내에서 동일 제목으로 2015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으니 아직 읽지 못한 이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한다. 도저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우기는 자들은 주말, 검색 엔진 등을 이용해 영화를 찾을 수 있고 저렴한 가격으로 내려받아 감상할 수 있다.

이 책은 종종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비교되어 소개되기도 하는데 ’안네 프랑크‘가 극한 상황 속에서 ’글쓰기‘가 보여주는 힘을 이야기했다면 ‘책 도둑’은 ‘글 읽기’의 힘을 보여준 작품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심한 상태다. 이렇게 가다가는 ’판데믹’(pandemic),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모든 사람이 감염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는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다. 어쩌면 다음 편의 글은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는 책을 소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지나친 공포는 더 지나친 상상을 낳게 마련이다. 책은 우리의 어두운 항해(航海)에 한줄기 불빛이다. 차분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미 이러한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경고는 수없이 해왔다. 어쩌면 이 일을 만든 인간들의 책임에 대해 스스로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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