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Asan’우리가 아산이다
‘We are Asan’우리가 아산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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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사랑의 온도계’가 100도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86도 선(1월30일 기준)에서 멈춰 섰다. 17년 만의 일이라고 하고, 전국적 현상이라는 말도 들린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물질 즉 돈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덩달아 인정, 온정의 우물이 메말라진 것은 이미 오래란 말도 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치를 잘못해서인가, 종교계의 목자들이 목양을 게을리 해서인가? 아름다운 우리네 미풍양속은 긴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지 너무 오래인 것 같다.

메마른 정서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가뭄 끝에 큰물이라도 나면 사막의 땅속에서 선잠을 자던 개구리 떼가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요란스레 울어대는, 흡사 그런 모습이다. 연전 아프리카 예멘 난민들이 내란을 피해 제주도로 무리지어 몰려왔을 때도 그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중국 우한에 거주하던 우리 교민들이 충청도 두 곳에서 집단보호를 받고 있는 최근의 일만 해도 그렇다. 곱디곱던 우리네 심성이 언제부터 저리도 일그러져 버린 것일까?

지난달 30일 오후 우한 교민의 임시거주시설인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을 찾았던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일부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날계란 세례를 받는가 하면 장관과의 대화 장소인 마을회관에서는 회관 입구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오죽했으면 ‘우한 지역 교민, 청와대에 수용하라’는 손팻말과 트랙터가 다 등장했겠는가. ‘결사반대’를 목청껏 외치는 일부 주민들은 팔짱을 끼고 도로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라돈 매트리스’ 파동에 이어 우환 교민을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으로 데리고 오려는 것은 충청도민을 우습게 아는, ‘충청도 홀대’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 전개에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극적인 반전이 뒤따랐다. 31일 오전 아산지역 주민들은 초사2통 마을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교민 수용을 더 이상 반대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대신 정부와 충남도에 철저한 방역대책을 요구했다. 비로소 소통이 이뤄진 것이다. 이를 전후로 이색 팻말이 생중계 화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 We are Asan’(=우리가 아산이다)이란 글씨가 선명했다. 인정, 온정의 소리와 함께 감동의 메아리가 아산의 하늘에 울려 퍼진 것이다.

“We are Asan. 고통의 절망 속에서 많이 힘드셨죠? 진천, 아산에서 편안히 쉬었다 가십시오. 우한 교민 여러분 화이팅!” “아산시민은 우한 교민을 환영합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한숨 내려놓으시고 아산에서 쉬시기 바랍니다.” “We are Asan! 우리는 서로의 사회안전망입니다. 아산시민은 환영합니다. 함께 이겨내요!!” 간간이 이런 문구도 시선을 끌었다. ‘# 손피켓 릴레이’, ‘# 우한 교민 환영’, ‘# 아산’, ‘# 진천’…. 우한 교민의 아산 수용을 찬성하는 아산시민들이 릴레이 캠페인에 앞장선 것이다.

아산에 거주한다는 엄 모씨는 페이스북 글에서 “한쪽 기사만 보시고 각종 SNS에서는 아산과 진천을 비방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마음이 참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처럼 우한에서 오는 우리 교민들을 환영하는 아산시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손피켓 릴레이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먼발치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한동안 눈언저리가 뜨거워 옴을 느꼈다. 어느 분의 수필에서 읽었던 ‘염화시중의 미소’도 몸소 체험하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게 우리 민족의 진면목이라는 생각이 진하게 스쳤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네 성정을 이리도 메마르게 비틀어버린 것일까? 정치인보다 종교지도자의 할 일이 더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땅 속에서 잠에 취한 개구리 시늉만 하고 있을 것인지. 그런 반문도 하고 싶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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