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扇子), 새로운 인식
부채(扇子), 새로운 인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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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섣달그믐이 지나면 새해다. 새해에는 누구나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어쩌면 동서고금의 사람 모두가 그랬을 수도 있다.

섣달 초부터 세우기 시작한 계획은 몇날며칠을 두고 최선을 다해 수정을 거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계획으로만 그쳤을지 모른다. 초하루부터 그 실천은 아예 엄두도 못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결심한 것이 사흘을 못 넘김)이지만 핑계는 매년 그럴듯했지 싶다. 필자도 그랬기에 공감이 간다. 경자년 올해도 다양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아무튼 모두 알찬 결실 거두기를 축원한다. ‘천 가지 나쁜 것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만 가지 복은 구름 일듯 흥하소(千災雪消萬福雲興)!’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다. 주로 더운 여름철에 사용한다. 우리 속담에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있다. 단오와 여름 그리고 부채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임이 틀림없다. 조선 말기까지 공조에서는 해마다 더위에 대비하여 ‘단오부채’를 임금에게 올렸고, 임금은 그것을 신하들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겨울부채’라는 말은 단오부채와는 달리 쓸모없다는 뜻의 비유로, 부채의 쓰임새가 여름 한철임을 알 수 있다.

과거 농촌에서 부채의 용도는 주로 불 피우기, 모기 기에 한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부채질의 목적은 더위를 가시게 하는 것이 첫째·둘째·셋째였을 것이다. 선풍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부채는 염천의 여름을 나는 데 필수적인 납량(納?=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기운을 느낌)의 도구였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흥양현(興陽縣)이 과거에는 대나무의 산지로 매년 부채 만드는 편죽(片竹)을 1천5~600 자루 혹은 2천여 자루를 순영에서 지정[卜定]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대밭이 점차 옛날 같지 않아 여기저기 다른 고을에서 사다가 복정된 양을 채워 납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근래 각 읍의 대밭이 곳곳마다 벌거숭이가 된 것이 본읍과 다름이 없으니…”(정조 실록 41권, 정조 18년 11월 27일 신해 2번째 기사, 1794년 청 건륭(乾隆) 59년), “부채 만드는 제도도 오로지 튼튼하고 소박하게 만들도록 하고 부챗살 수는 단오선의 살수를 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겉에 뿔을 대어 기교를 부린 것이니 합죽선, 옻칠한 종이부채 따위들을 일체 엄금하소서.”(정조실록 41권, 정조 18년 11월 27일 신해 2번째 기사, 1794년 청 건륭 59년).

위 예문에서는 ‘단오선 일천병(端午扇一千柄)’, ‘단오선 봉진(封進)’ 등 부채에 관한 기사를 찾을 수 있어 부채의 활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는 황해도 재령 등지에서 생산되는 풀잎으로 엮어 만든 부채를 두고 바람 맑은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는 덕, 값이 싼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햇볕을 가리는 덕, 독을 덮는 덕 등 여덟 가지 덕의 부채 즉 팔덕선(八德扇)을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부채는 어르신 앞에서 하품할 때, 빚쟁이와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가릴 수 있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채는 무용인의 부채춤, 양반춤, 그리고 소리꾼과 무당의 지물로도 사용되며, 민화에서 양반의 폼 잡기 전용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렇듯 부채를 평소 대수롭지 않은 물건쯤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설날 연휴 민속촌에서 줄타기하는 행사를 TV를 통해 본 이후 부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약 3m 높이, 10m 길이의 줄에서 혼자 줄을 타는 광대가 부채를 쥔 손은 어김없이 오른손이었다. 그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아온 것이 부채였다.

줄타기 광대는 줄을 타기 전에 어릿광대와 대화하거나 때론 관객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줄을 타기 시작하면 오직 부채만 의지할 뿐이다. 부채에는 광대를 살리고 죽이는 절대적인 역할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높게 설치된 외줄을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타면서 나아가는 광대는 오직 부채 하나로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잡는다.

가만히 기억해보니 부채를 손에 쥐지 않은 줄타기 광대를 본 적이 없다. 우리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많은 문제가 마음이나 몸의 불균형으로 생겼음에도 인생살이에 조언해줄 수 있는 스승 같은 노숙(老熟)한 부채가 없었다. 줄타기를 본 이후 부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오직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라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마음과 몸의 균형을 잡는 도우미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가게 된 것이다.

새해에는 선물로 부채를 주고받자.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는 스승의 존재로 인식하자. 그리하여 일 년 열두 달 언제든지 선물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부채로 인식하자. 새해부터 마음에 혹은 손에 부채를 쥐고 생활하기를 권하고 싶다. 부채는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부모, 형제, 스승,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전깃줄에 내려앉는 떼까마귀의 행동을 관찰했다. 몸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은 듯 꽁지깃을 부챗살처럼 활짝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줄타기 광대의 손에 쥐어진 부채의 활용과 떼까마귀 부챗살 꽁지깃의 활용을 번갈아 떠올리며 설날 연휴를 의미 있게 보냈다. 떼까마귀 꽁지깃의 생태를 모방한 ‘울산 대나무부채’의 활용을 제언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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