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에 맞춰
왈츠에 맞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3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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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톡 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회원만 그것도 선착순으로 음악회 관람 표를 할인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신년음악회라는 근사한 타이틀, 그것도 비엔나 왈츠 오케스트라 연주라는 말에 얼른 답을 보냈다. 이 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를 통해 이미 알았는데 가격 때문에 망설이던 차였다. 오케스트라 연주 소리가 잘 들리는 자리, 연주자의 세밀한 움직임을 보려면 최상급 좌석을 사야하는데 관람료가 조금 부담되는 값이었다. 배정 가능한 할인 좌석은 두 장뿐, 그럼에도 큰 할인 폭 덕분에 최상급 좌석을 예약하니 괜히 뿌듯했다.

해마다 열리는 ‘빈 필 신년음악회’는 익히 명성이 자자하다. 좌석을 예약하려면 거의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이다. 나는 이 음악회를 텔레비전 실황 녹화 방송으로 많이 접했다. 비록 현장에 가지 못할지라도 음악회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리 넓지 않은 극장, 온 좌석을 꽉 메운 관객, 경쾌한 왈츠를 중심으로 한 선곡,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소리의 고저를 맞추는 악기의 선율은 그저 시청만 해도 황홀하다. 맘껏 음향 볼륨을 올려도 좋을 만한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놓쳤다. 아니 방송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와중에 우리 지역에서 비엔나 오케스트라의 공연 소식을 접했으니 아니 갈 수 없지 않은가. 규모나 레퍼토리는 다르지만 ‘비엔나 왈츠 오케스트라’라는 이름값을 믿고 갔다.

일찍 도착해서 예약한 표를 찾고 주변을 둘러본다. 몇몇 아는 이들이 눈에 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것도 잠시, 예약한 좌석을 찾아 앉았다.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리고 드디어 음악회 시작이다. 생각보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작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로 구성하는 연주자의 수가 그리 풍성해 보이지 않는다. 안내 프로그램을 보니 빈 필 신년음악회 순서와 닮았다.

‘빈 필 신년음악회’의 특이한 화면 구성 중의 하나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빈 곳곳을 다니며 춤을 추는 장면이다. 왈츠의 선율을 따라 무용수들은 오스트리아 빈의 고풍스러운 성을 누비고 아름다운 강줄기를 따라 구애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그것을 염두에 둔 구성인지 실제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무대에 등장한다. 두 명 혹은 네 명의 발레 무용가들이 선곡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발레 동작에 관심이 많은 나는 주의 깊게 그들의 동작을 살핀다. 최고 일류 무용수가 보여주는 동작은 아니지만, 현장감에 만족했다. 무용수에 머무는 눈길을 지휘자에게, 연주자에게 돌리는 사이 금세 연주가 끝났다. 반짝이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소프라노 가수는 마술 피리를 부는 ‘밤의 여왕’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연주가 거듭될 때마다 관객의 박수 소리는 더 크고 길게 이어졌다.

내가 예약한 자리는 VIP 등급이었지만 늦게 예약한 탓에 무대가 바로 보이는 중간 좌석이 아니었다. 앞에서 여섯 번째 줄임에도 무대 좌우를 전부 어우르기에는 부족했다. 오른편에 앉은 연주자, 오른쪽으로 등장하고 퇴장하는 무용수들의 면면이 더욱 잘 보이는 자리라서 조금 아쉬웠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를 끝으로 연주가 끝났다. 이어 앙코르는 ‘라테츠키 행진곡’이다. 신년음악회의 시그니처처럼 자리매김한 곡이다. 관객도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며 연주를 맘껏 즐기는 시간이다. 지휘자의 익살스러운 몸짓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의 의도된 듯한 이탈이 불러오는 상황은 관객을 더욱 달아오르게 한다. 지휘자도 놀랄 만큼 앙코르를 외치고 연주자와 무용수들이 거듭 화답한 후 음악회는 끝났다.

아직 가시지 않는 왈츠의 선율을 느끼며 대공연장을 나선다. 다음에 또 오리라 다짐하는 사이, 언뜻 지난번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느낀 감정이 다시 올라온다. 최고 등급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려면 한 사람당 적어도 오만 원에서, 많으면 십만 원 정도를 잡아야 하니 4인 가족 기준으로 공연 보고 식사라도 하려면 이십 만원이 훌쩍 넘는다. 최저시급으로 따지면 꽤 많은 시간이다. 때에 맞춰 혹은 취향에 맞춰 연극, 음악, 무용, 국악을 비롯한 공연 문화를 누리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은 기획으로 비교적 적은 값을 받는 공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허나 아무래도 공연의 품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름난 가수의 공연, 레퍼토리가 다양한 연주, 스케일이 큰 뮤지컬, 콘서트를 부담 없는 값에 구경할 묘안은 정말 없는 걸까. 문화비 값을 최저시급에 맞춰 책정하고 남은 비용은 보조해주는 문화비 보조금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시급이 찔끔 올랐지만 괜찮아. 왈츠를 듣는 값도 그만큼 밖에 오르지 않았으니 말이야.”

이 말을 뱉는 이들이 많기를, 공연장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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