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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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서부경남의 선비 고장 산청이다. 다른 경상도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보수적인 정치성향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우리 집안도 마찬가지다. 읍에서 10년 넘게 이장을 맡으셨던 아버지가 대표적이고, 집안 살림밖에 몰랐던 어머니도 자연스럽게 보수정당을 지지하셨다.

필자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동구의원에 당선된 이후 집안에 변화가 찾아왔다. 가족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각자 목소리를 낸다.

이번 설 명절 때 팔순을 넘긴 친정엄마는 “요즈음 국회에서 야당 하는 꼬라지가 정말 밉데이”라고 말씀하셨다. 동네 마을회관에 가서도 목소리를 높이시는 모양이다. 지금껏 형님 동생으로 잘 지내오던 한 아지매가 “딸이 진보다 보니 그런 말 하는갑네”라고 받아치니 친정엄마는 “형님은 여·야를 떠나가 뉴스 보고도 그런 소리 하는교”하고 되받아쳤다고 한다.

큰오빠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시절 최루탄을 마셔가면서 데모를 하다가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하는 등 진보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보수색이 짙은 고향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탓일까 이제 완전 보수로 돌아섰다. 이번 설 명절 때는 정치인들도 윤석열 검찰총장만큼만 하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둘째오빠는 A중공업의 간부이자 절실한 기독교인이다. 성향은 진보에 가깝다.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올해는 아파트 동 대표에 출마해 볼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큰 형부는 정년퇴임 후 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더니 2년 만에 주민자치부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새마을협의회 등 여러 자생단체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큰 언니의 정치성향은 중도에 가깝다. 언제나 바른 소리를 하는데 가족 중에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한다. 워낙 할 일을 똑 부러지게 할 뿐만 아니라 논리정연하게 맞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노처녀인 막내여동생은 집안에서 가장 별종이다. 성격이 대단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른바 ‘문빠’이자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다. 필자보다 더 진보적이며 정치에 훨씬 관심이 많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필자에게 길고양이 관련 법안을 만들어 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흔히 가족들과 다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를 겪으며 극명하게 민심이 갈라진 터라 더더욱 그렇다. 진보단체 중심의 집회, 보수단체 중심의 집회로 양분돼 광장에서 시작된 대립은 정부를 향한 검찰의 수사 논란이 더해져 더 격렬해진 상태다.

대립의 원인은 우리 정치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정치는 승자는 전부를, 패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다. 상대방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결이다. 경쟁자를 깎아내리기 위해 상대방은 무조건 무능하고, 잘못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온갖 꼼수와 반칙도 횡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각자 다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유쾌한 설 명절을 보냈다. ‘다름’을 ‘틀림’으로 곡해하는 일이 없어서였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다 보니 옮고 그름을 따지며 대결하는 일도, 그로 인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었다.

이제야 우리 정치는 선거제도 개편으로 변화를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47석 중 17석은 기존대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뉘지만 30석은 각 당의 지역구 당선자 수와 정당 지지율 등에 따라 배분한다. 승자독식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가 더 가속화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생각도 변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명심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은 패배하면 사라지는 정치인들이지 국민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봉선 울산동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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