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영어참고서
빌 게이츠와 영어참고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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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학시절 이야기다. 한반에 육십명, 열반이 있었으니 한 학년이 거의 육백명이 되는 셈이다. 그땐 중·고교에 입학시험이 있어서 학교마다 1차, 2차 레벨이 매겨져 있었다. 그래서 교육열이 높았던 대구지방은 그때도 과외열풍이 보통이 아니었다. 과외학원이 있으면 거기엔 반드시 인기 스타강사가 화제였다. 한번정도 재미있게 강의를 듣고는 나 홀로 공부해야겠다는 결의가 생겼다. 그 중 영어학습은 나에게 큰 흥미를 갖게 해주었다. 유능한 강사가 있어 잘 가르쳤고 참고서도 재미있게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과목만은 성적이 유난히 좋았다. 월례고사는 매번 100점에 근접했고, 학년말 종합성적은 102점까지 마크되기도 했다. 아마도 담임이 보너스로 2점을 더 보태주셨던 것 같다. 성적규정상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는 그런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공부를 어떻게 했길래 영어점수가 그렇게 잘 나왔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영어참고서에 대한 ‘호기심’과 철저히 공부해보겠다는 ‘자신감’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중학교 때 공부한 그 영어참고서는 구성이 특이하여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특히 참고서 표지 안쪽의 <일러두기>가 백미였다. 공부하는 학생이 지켜야할 몇 가지 <건강수칙> 같은 것을 적어놓았는데, 첫째, 아침에 일어나면 똥을 누라! 똥은 적이다. 둘째, 아침에 냉수마찰을 해라! 셋째, 잠은 10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라! 등 열 가지 정도의 명령조 표현을 영어와 같이 써놓았던 것이다. 꽤 흥미로운 책이어서 그 당시 중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였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 시애틀 옆에 길이 35킬로의 엄청나게 큰 호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호수다.

그것이 내려다보이는 메디나(Medina)라는 동네는 미국 갑부들이 많이 산다. 마이크로소프트사(MS)를 창립한 세계갑부 1위 ‘빌 게이츠’도 이곳에 살고 있다. 자산규모 90조의 그는 그곳 2천평 대지에 있는 저택에 안거하는데, 7년의 건설공사로 상상할 수 없는 초현대식 문화시설과 최첨단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저택 이름도 MS답게 이상향(무릉도원)이라는 의미의 ‘재너두(Xanadu) 2.0’으로 명명했다. 바로 호수 건너편이 그가 태어난 고향 시애틀이 바라다 보이는 환상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1년에 300권을 읽는 책벌레다. 그래서인가, 책속에서 수많은 호기심거리를 찾아내는 것 같다. 성공 후, 그의 많은 명언들이 세계인들을 감동시킨다. ‘호기심을 가져라’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 시스템에 남다른 호기심을 발동했다. 고교 때는 시애틀 시내의 교통신호체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향을 위해 봉사했다. 그만큼 재능 있고 호기심 가득 찬 학생이었다.

‘우주는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잘 되는 건 당연하며,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도도할 정도로 ‘자신감’에 찬 모습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1975년 그의 나이 20살, 일찍이 동창 폴 앨런과 같이 MS를 창업, 일약 40살에 세계갑부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최근까지도 1, 2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그는 모든 이에게 경종을 울린다. ‘태어나서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다.’라고…. 그것은 곧 무슨 일이든 ‘자신감과 호기심’을 갖고 실행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닌가?

지금은 조용히 아내 멜린다, 세 자녀와 함께 대저택 재너두 2.0에서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여생을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역사에서 삶의 목표와 미래의 꿈을 미리 정하고 그 실현을 위해 열심히 대비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목표에 도달했다. 거기에는 늘 호기심과 자신감이 상존한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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